외화내빈(外華內貧)이니 빈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이 있다. 한국의 국회에 꼭 해당되는 말이다. 헌법이나 국회법 내용 대로라면 내각제가 무색하리만큼 우리의 국회는 정치 권력의 핵심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통령의 영향권을 좀처럼 벗어 나지 못하고 있는 게 ‘민의의 전당’이 처한 현실이다.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대통령이 여당의 총재직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를 지휘하는 의장은 대통령 지명을 받아야하고, 직선제가 도입됐다고는 하지만 여당 원내총무 역시 청와대가 고개를 끄덕여야 감투를 쓸 수 있다.
정치적으로 예민한 문제를 놓고 국회, 특히 여당이 독자적으로 결정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김심(金心)’이 하달되면 그것으로 끝이다. 찍으라면 찍고 반대하라면 하는 게 신상에 좋고 출세도 보장된다.
YS의 문민정부와 DJ의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우리나라에도 민주주의가 만개했다고 자랑한 게 엊그제다. 하지만 양 김씨의 정치기록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이다. ‘독선적’ 이라느니, 심지어 ‘독재적 통치’라느니 하는 비난을 받고 있다. 그 배경에는 이런 저런 이유들이 제기되고 있지만 국회를 비민주적으로 끌고가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지적사항이다.
헌법이나 국회법에 국회를 ‘3권분립의 헌법기관’으로 치켜놓고, 그를 대표하는 국회의장의 권한을 잔뜩 부여해 놓은들, 지존처럼 된 대통령의 휘하로 전락한 상태에서 국회가 무슨 힘을 발휘하겠는가.
얼마 전 타계한 미의회의 거물 팁 오닐은 자서전에서 하원 의장에 관해 이렇게 썼다. "미국의 헌법에는 하원의장의 의무나 권한에 관해 구체적인 규정이 없다. 심지어 하원의장은 하원의원이어야한다는 규정조차 없다.--그러나 의장은 법안을 입안하고 통과 시킬 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의장이 결심하지 않으면 의제채택도 안된다. 의원들의 상임위 배치에서 본회의 연설 까지 모든 권한이 그에게 속한다."
이 때문에 대통령은 의장을 초치해 법안을 직접 설명하고 가장 능력있는 참모를 의회에 상주시키며 설득과 호소 그리고 ‘정치적 딜’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자신이 의장으로 있던 10년 간 포드, 카터, 레이건이 자신에게 점수를 따기위해 어떻게 ‘아양’을 떨었는지 오닐 특유의 해학적 증언도 나온다.
이런 미 의회와 대통령간의 관계를 우리 현실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청와대의 입김으로 국회가 좌지우지되는 경우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지난 달 말 국회가 이한동총리 해임건의안에 대해 표결조차 못한 채 의안을 휴지통에 던져 넣은 사건은 한 예에 불과하다.
야당이 제출한 해임건의안에 대해 집권 여당은 투표도중 소속의원들을 밖으로 불러 내 투표를 하지말라고 일렀다. ‘반란표’를 겁냈기 때문이다. 여당에서 2표만 반란을 일으켜도 해임안이 가결될 판이니 겁도 났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과연 의회민주주의를 떠들어 온 집권 여당이 할 일인가. 야당이 법안심사를 거부할 때마다 "국회법에 따라 표결로 처리하자"던 여당의 주장은 어디로 갔는가. 야당이 표결거부라는 떼거지를 써도 할말이 없게됐다.
김대중 정부 들어서서 이처럼 중대한 정치적 패착을 둔 것은 이게 처음이 아니다. 정권 출발 초 김종필 총리 임명 동의안을 놓고서도 민주당과 자민련의 투표방해로 표결이 무산됐다.
그 당시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투표함은 중도에서 밀봉돼 국회 지하창고로 들어갔다. 이만섭의장이 그런 조치를 내렸다. 역대 여당에서 그리고 민주당으로 배를 갈아탄 뒤 국회의장 자리를 두 차례나 차지한 인물. 가끔 바른 소리를 해 "그래도 이만섭"이라는 말을 듣는 그지만 결정적 순간에선 맥없이 물러나고 마는 게 그의 장기다. 여당을 향해 "이건 민주 방법이 아니다. 여당의원들은 가-부 투표를 하라"고 왜 일갈하지 못했는가. 자신을 의장에 지명한 김대통령에 대해 마지막 충성을 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50년간 워싱턴 정가를 주름잡고 역대 대통령을 혼낸 오닐, 그러나 협상의 명수인 그 아이리쉬 노인은 가슴을 펴고 말했다. "나는 ‘미스터 체어 맨(의장님)’이라는 자랑스런 호칭에 자긍심을 갖고 정든 의회를 떠난다." 딱히 이만섭의장 한 사람만 가슴에 삭일 말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