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름다운 오월에

2001-05-1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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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고윤(라카냐다 한인교회 사모)

엔젤레스 크레스트 길가에 짙은 안개가 낀 이른 아침 아이들을 등교시킨 후 집에 오며 지난밤에 통화를 했던 친구를 생각했다.

"아니 이럴 수가 있니?" 미국으로 단체 여행을 왔다 만나지도 못하고 가게 되어 너무 마음이 상해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전화하노라고 했다.

"그러게 말야, 이럴 수도 있구나" 차라리 내가 위로를 하며 전화를 놓고 보니 창가로 스미는 달빛이 유난히 밝아 멍하니 서성이다 다시 잠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나를 위해 기도해 주었던 귀한 친구였다.


"여기까지 와서도 못 보고 가다니" 서운한 마음을 담아 차 한잔 마시며 버릇처럼 음악을 켜니 마침 보헤미안의 향수를 그린 신세계 교향곡이 들려왔다. 어느새 내 마음 구석에 조심스레 동여놓은 추억의 보따리를 풀며 신촌고을로 향하고 있었다. 아카시아향, 라일락향이 흩뿌리는 계절이 되면 교정 뒷산 청송대에서는 ‘숲속의 향연’이란 대학 축제가 펼쳐지곤 했다.

방송 PD들의 사랑(?)을 받던 프로그램이었다. 부푼 가슴을 안고 윤동주, 워즈워스, 김춘수, 릴케…

그들의 시 한줄을 옮겨 적으며 정교한 비단 천에 곱게 물들인 색실로 수를 놓아가듯 아름다운 선율을 열어 띄워 보내는 오월의 하늘이었다. 그 아래서 정다운 동무들과 모여 앉아 젊음을 노래하던 그 시절이 지금도 풋풋한 봄의 향으로 내 곁에 남아 있다. 내 편지를 기다리신다는 선생님께 언제인가 몇 줄 시작했던 안부를 마저 드리고자 하던 중 우연히 눈길이 멈춘 책이 있었다.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제목이 그렇듯 바랜 빛으로 한구석에 있던 책을 열어 간간이 줄까지 그어져 있는 페이지를 읽으며 허전한 마음이 되어 덮었다. 그 나그네의 마음에 아(!)하고 문득 생각나는 이름이 있었다. 마치 삶의 적막함을 깨우는 바이얼린의 E음처럼 선명한 음이 되어 엘레나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얼마 전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카니벌이 있었다.

학교 마당에서 흥미로운 게임과 오락시설을 준비하고 기금을 모으는 행사였다. 솜사탕, 팝콘, 스노우콘 등을 들고 다니며 회전목마를 타려 줄을 서 기다리며 즐거워하던 계집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조약돌 위로 흘러가는 물소리처럼 돌돌 거리며 지금도 귓전에 남아 타골의 글 ‘바닷가에서’를 생각케도 했다. 우리도 딸아이들이 있어선지 참으로 그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이 곱게 피어나기를 간절히 비는 마음이 되었다.

그곳에서 만나 함께 일을 했던 곱슬머리의 여학생 이름이다. 지나가는 친구들 선생님들 학부모님들 동네 꼬마들까지도 큰 소리로 외쳐 불러모아 한시간도 안되어 목이 쉬었으나 덕분에 몇배의 수익이 되었던 보람이 있었다. 그 열심에 감동되어 떠나기 전 상품을 주려고 하는 저에게 "괜찮아요. 하는 일이 너무너무 재미있었거든요. 안녕히 가세요" 하며 여운을 남기고 헤어졌다. 나성의 기후처럼 메마른 땅을 지나는 이즈음, 길모퉁이에 선 저에게 그 여학생을 만나게 해 주신 하느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다.

길가일까? 돌밭일까? 가시떨기일까? 좋은 땅일까? 비록 어느 밭에 떨어질지 알 수 없으나 우리 손에 쥐어주신 씨 한줌! 한알이라도 잃어버림이 없이 때를 얻던 못 얻던 열심으로 뿌리고 다녀야 됨을…

이역의 하늘 아래에서 고향의 봄을 그리워하며 내다보았던 창가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심지도 않은 소나무가 제법 커서 그 그늘 곁에 제풀로 자란 넝쿨민트의 보랏빛 꽃이 옹기종기 피어있어 가꾸지 못한 우리 집 앞뜰을 지켜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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