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유를 찾아 왔어요"

2001-05-1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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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천식 차장대우

지난 8일 저녁 6시40분쯤 샌디에고에서 급전이 왔다. 북한 국적자가 밀입국하려다 국경에서 붙잡혔는데 이민국에 망명신청을 하고 풀려난다는 내용이었다. 김씨는 이날 밤 8시30분쯤 석방된 그녀의 표정에는 꿈에도 그리던 자유의 땅에 첫발을 디딘 안도와 기쁨이 담겨져 있었다. 한동안 인터뷰를 망설이던 김씨가 조금씩 묻는 질문에 대답을 했다. "고향이 어디지요" "함경북도 무산" "어떻게 미국에 올 생각을 했지요"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현재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고있는 탈북자들은 약 20만 명에 달한다. 이들은 굶주림과 헐벗음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찾겠다는 희망 하나로 죽음을 무릎 쓴 사람들이다. 북한 공안원에게 들킬 까봐 옷차림과 말씨를 연변 조선족 동포들처럼 바꿔버리고 정착한 뒤에도 숨소리 한번 제대로 내지 못한 채 하루 하루를 불안하게 보내고 형편에 있다.

지난 94년 북한을 탈출했던 김씨도 연변동포들 사이에 섞여 6년을 살았다. 김씨는 공안원에게 코가 꿰어져 끌려가는 탈북자를 보고는 연변사람처럼 보이려고 눈썹수술까지 했다. 중국, 홍콩, 필리핀, 멕시코를 거치는 대 역정 끝에 미국의 발치에까지 왔지만 결국 밀입국을 하려다 적발돼 감옥에 가는 신세가 됐다. 김씨는 이때 자신의 국적을 북한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이민국에서 북한국적을 주장했기 때문에 일단 추방결정이 내려지면 북한으로 송환되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 한인사회는 자유와 풍요로움을 찾아 죽음의 바다를 건너 미국을 찾아 온 김씨를 따뜻하게 감싸줘야 한다. 김씨를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진짜 북한사람이냐’ ‘사투리가 연변사람 같다’는 식으로 보는 것은 같은 타향살이 하는 동포들끼리 차마 할말이 아니다.

식량난과 인권탄압에 찌든 북한주민들의 엑소도스(Exodus)가 계속되는 한 앞으로 태평양을 건너와 미국 땅에서 망명을 신청하는 북한인들이 줄을 이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때가 돼서도 이민국 직원처럼 이들의 신분확인에 의문을 제기하는 식의 괴상한 사고와 논리를 펴서 동포애를 등지고 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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