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음의 소리를 듣는 부모

2001-05-1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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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숙(유스 앤 패밀리 포커스 대표)

건강한 사회인이 되기 위해 열심히 자신을 다듬어가고 있는 세 딸들을 보니 그동안 치러야 했던 만만치 않은 과정들이 생각나면서 다시 한번 자녀의 소중함을 깊이 느끼게 된다. 이제 막 사춘기로 들어선 막내를 보며 저 아인 자신에게 다가오는 세상과 문화를 어떻게 소화하고 반응할 것인가에 자못 조금은 긴장하며 조금은 흥분된 기대감으로 아이의 말과 행동, 그리고 그 표현에 세심한 관심으로 대하고 지켜본다. 다행히 세 딸 중 가장 자기 표현을 바르고 성숙하게 지혜롭게 하는 이 막내는 13세의 생일날 내게 이런 부탁을 했다. “엄마, 나 드디어는 틴에이저가 되었어요. 아마 엄마가 조금은 더 조심스럽게 내게 세심한 배려를 해주시면 좋겠어요. 알잖아요? 그 틴에이저를 어떻게 잘 지나가야 하는지요?”

한국말로 하면 그런대로 좋게만 들리는 이 말엔 여러 의미가 있었음을 나는 즉시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Mom, I finally became a teenager today. From now on would you be a little more careful and concern about my thoughts?" 그런대로 공손한 어휘였음에도 불구하고 막내의 이 말은 이미 두 딸의 growing pain(성장과정의 아픔)을 겪은 나를 긴장하게 만들기에 충분했고 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로 하여금 아주 다소곳한(?) 자세로 그 말을 되새기게 하는데 충분한 효과가 있었다.

그간에 그 아이와 내가 치러낸 것들은 대강 이런 것들이었다. 그 나이에 아이들이 으레 관심을 갖는 것과 마찬가지인 지극히 틴에이저다운 부분화장과 그 또래의 남자아이에 대한 관심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그야말로 예측을 불허하는, 조석변이라고 할 수 있는 흥미 있는 생각의 변화를 보았다. 엄마의 생각 같아서는 부분화장에 대한 관심 같은 것은 없었으면, 그리고 남자아이에 대해서도 그냥 지나가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순간 순간 그것들에 대해 너무 솔직히 내게 상의해 오는 막내가 처음엔 조금은 당황스럽다가도 결국은 엄마에게 완전하게 드러내 표현해 버리는 그것으로 인해 그 나이다운 순수한 결론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을 볼 때 오히려 어린이다운 순진함과 솔직함을 보며 오히려 긴장감을 풀 수 있었으며 그 아이의 성장과 변화를 아주 깊이 함께 즐길 수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자연스레 그 아이의 좋은 조언자, 상담자의 역할의 자리에 와 있는 기쁨과 아이의 은밀한 비밀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특권까지 누리며 우리는 같이 행복해 했다. 반면에 이렇게 막내와 행복해 하는 순간 순간마다 내가 큰 아이에게 했던 실수들이 가슴 깊은 곳에 느껴지며 용서를 비는 마음이 더욱 절실해져 있음을 나는 부인할 수 없었다. "정말 부모들은 아이들을 키우면서 같이 배우고 성장하는구나"를 다시 한번 체험하게 된다.

내가 큰 아이의 사춘기를 지내면서 잘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얼마나 미성숙하고 부족했었는지를 뒤돌아보며 깊이 사과하는 마음이 들게 된다.

누구인가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우리는 우주의 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는 편리하고 굉장한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행운이다. 그러나 그것에 너무 분주한 나머지 가장 가까운 내 이웃의 소리, 내 자녀의 소리는 듣지 못하는 불행한 시대를 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라고 한 것처럼 나도 우리 큰 아이의 내면의 소리를 듣기보다는 내 삶이 내게 요구하는 소리에 더 열중했었음을 시인한다.

우리에겐 든든하고 자랑스러운 딸이 되어주었지만 그 아이의 내면의 마음의 소리를 듣고 그 세계를 들여다보며 바르게 이해하며 바람직하고 지도하고 조언해 줄 수 있는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많이 놓쳐버린 것 같아 안타까움이 든다.

아이가 자신을 아름답고 조심스레 만들어 가는 세계에 부모들이 초청 받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하기보다는 들어주는 연습을 하는 부모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자녀 속에 일어나는 미세한 감정의 변화, 그리고 자녀 스스로도 정리되지 않은 혼돈스런 생각까지 넉넉히 품어주고 인도해 줄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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