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면초가의 미국

2001-05-10 (목)
크게 작게

▶ 미국의 시각

▶ 진 커크패트릭/LA타임스 기고

미국이 지난 1947년 설립 이후 계속 주도권을 지켜왔던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쫓겨났다. 서방국에 할당된 3석이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웨덴에게 돌아갔다. 미국이 지난주 투표에서 패배한 이유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세계 온난화에 관한 교토협정, 그리고 지뢰방지 국제형사법원 등에 관련된 미국의 입장변화에 대한 불만이 가장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 부시 정부가 구소련과 체결했던 미사일방지협약 ABM을 폐기하고 미사일 방위시스템 NMD를 구축하려는데 대한 반발도 작용한 것이 틀림없다.

미국은 국제마약통제위원회 경선에서도 재선에 실패했다. 이 두 위원회 회원 선출은 유엔경제사회이사회에서 실시됐는데 미국에 대한 지지를 약속했던 국가들 중 상당수가 비밀투표로 실시된 경선에서 약속했던 지지표를 던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연방하원국제위원회 헨리 하이드 위원장은 이 같은 결과가 미국이 국제인권 문제에 대해 강경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대한 보복으로 빚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이 그동안 유엔에서 다른 나라 인권문제에 대해 솔직히 말해왔다는 점에서 미국이 일부국가들로부터 반감을 샀을 가능성은 있다.


자국의 국내 인권문제가 복잡한 나라일수록 인권위원회 회원국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리비아, 시리아, 수단, 시에라 레온, 우간다, 중국, 쿠바 등이 좋은 예다. 프랑스 대사는 프랑스가 인권위에서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유가 다른 나라에 대해 ‘대화와 존중’을 중시하는 외교정책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말대로라면 미국의 인권위 탈락은 외국 인권문제에 대한 간섭 때문이다. 중국은 그동안 미국에 대해 "인권문제를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무기로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해 왔다.

이들 인권문제가 심각한 국가들 가운데 미국의 친구가 없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번 투표 결과를 보면 민주국가들 가운데서도 미국의 친구가 많지 않은 것 같다. 지난 10여년 동안 미국과 나토 사이에 상당한 틈이 생겼다. 15개국중 13개국이 사회주의 체제 하에 있는 나토 가맹국 언론들은 평소 미국과 ‘미국식 방식’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해 왔는데 부시 대통령 취임후 보수화 경향이 뚜렷해지자 비판의 강도를 더욱 높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더 이상 EU 국가들과 국제무대에서 공동보조를 취하기가 어렵게 됐다. 우리의 전통적인 적들 뿐 아니라 우방들과도 경쟁을 피할 수 없게된 셈이다. 미국의 1표로 EU의 15표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