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 인권 문제 정신 차려야

2001-05-0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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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홍주 <예일대 교수>

50년전 엘리노어 루즈벨트 여사가 유엔 인권위원회를 창설하는데 기여한 후 처음으로 지난 주 미국이 인권위에서 회원 자격을 박탈당한 뉴스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 투표 결과보다 경악스러운 일은 미국이 서유럽 각국은 물론 수단이나 파키스탄 같은 인권 유린국보다 적은 표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인권위 회원국들이 미국에게 뭔가 메시지를 보내려고 한 것만은 틀림없다. 문제는 미국이 제대로 메시지를 전달받았느냐 하는 점이다.

두가지 반응만은 피해야 한다. 하나는 인권위는 실권이 없는 기관이므로 이번의 치욕적인 외교적 패배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태도다. 인권위가 말만 많고 하는 일이 별로 없는 곳인 점은 맞다. 그러나 인권위가 특별조사위 구성 등을 통해 인권 위반 사례를 지적하고 주요 원칙을 세우며 각국의 의견일치를 도출하는데 누구보다 큰 공을 세운 것 또한 사실이다.

싫건 좋건 인권위는 인권과 민주주의에 관한 의제를 앞으로도 정해 나갈 것이다. 우리가 여기 불참한다면 우리는 점점 더 타겟이 될 것이다.


이보다도 더 나쁜 반응은 유엔 회비를 내지 않거나 보복 조치를 취함으로써 유엔에 대해 교훈을 주려 하는 것이다. 이처럼 심술을 부리는 것은 비효과적일 뿐 아니라 사태를 악화시킬 소지가 있다. 그럴 경우 유엔 멤버들은 우리가 원하는 조치에 반대표를 던지는 것은 물론 다른 기구에서도 미국을 축출하고 우리가 원하는 사람을 필요한 자리에 앉히지 않음으로써 복수하려 할 것이다. 우리는 유엔이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높은 이상에 별 관심이 없는 회원들이 우리를 배제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더 유엔을 지지해야 한다.

지난 주 일어난 사태는 더 이상 세계가 미국이 하자는 대로 따라 가던 시대는 끝났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다. 우리가 특별나다는 생각 때문에 우리는 그동안 유엔에서 독불장군 식으로 혼자만 표를 던진 경우가 너무 많았다. 과거 우리는 싼 에이즈 약품 보급을 늘리는데도 반대표를 던졌고 사형제 시행 중단에도 반대했다. 미국보다 훨씬 더 법을 안 지키는 나라들도 아동의 권리, 여성차별 반대, 지뢰 반대 등에 관한 협정을 인준했음에도 연방 상원은 이에 관한 청문회 여는 것조차 보류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무관심이나 분노가 아니라 행동이다. 부시 외교팀은 앞으로 인권을 고취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3가지 있다. 첫째는 올 6월 유엔총회에서 열릴 에이즈 퇴치 회의다. 미국은 여기서 코피 아난 사무총장이 제안한 에이즈 기금 설치에 앞장서야 한다. 둘째는 8월 남아공에서 열리는 인종차별 반대회의다. 아프리카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지한다는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미국에서의 인종차별 문제를 겪으며 얻은 교훈을 제시한다는 관점에서도 콜린 파월 국문장관이 미국 대표단을 이끌고 가야 한다.

세 번째는 올 9월 서울에서 100여 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열릴 민주주의 커뮤니티 총회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김대중 대통령이 주재할 이 회의에 참석함으로써 미국은 인권위가 아니더라도 에이즈와 온난화 현상, 마약과 테러등 인류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

지난 주 사태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인권에 관해 미국의 리더십을 필요로 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럴 용기와 비전을 갖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워싱턴 포스트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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