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존경받는 기업이 되라

2001-05-0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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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승훈 <퍼스트 인터콘티넨탈 은행장>

한국 삼성그룹의 1세 오너인 이병철 회장은 직원들에게 하는 일에 꼭 1등을 해야 한다고 교육했고 이로 인해 삼성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기초를 단단히 닦았다고 생각한다. 또한 필자는 삼성과 거래하는 업체 및 은행들도 삼성그룹이 성장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믿는다. 그러나 삼성은 1등 기업이 되는데는 성공했지만 주변으로부터는 존경받는 데는 실패했다는 의견이 많다. 원인은 혼자만 1등을 하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남들을 돌보는 아량이 미흡했기 때문이다. 필자가 70년대 말 미국 은행 서울지점에서 근무하던 시절 잊혀지지 않는 사건이 있었다. 모 계열사 자금담당 직원이 기한부 신용장 결제 때 적용되는 이율이 타 미국은행보다 조금 높게 결제됐다고 해서 하루종일 내 책상 옆을 떠나지 않고 수정을 요구한 적이 있었다. 미래 날짜에 적용되는 이율을 각 은행끼리도 예측할 수 없으나 그 은행의 현 추세로 봐서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 은행을 선택한 것이었다. 미국은행의 평균 이율보다는 월등히 낮았지만 기어이 최저 은행의 이율을 맞춰 달라고 부당하게 요구하는 바람에 아주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 은행 거래라는 것은 조금 손해 보는 것이 있으면 후에 꼭 보상받을 수 있는 일이 생긴다. 이러한 태도는 조직 자체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최대의 이윤을 창출해야 한다는 오너 회장의 철학에서 기인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반면 그 당시 상황에서 이러한 정신이 없으면 지금 이렇게 생존할 수도 없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이 짐짓 들기도 한다.

2세 오너인 이건희 회장은 그룹 승계를 하자마자 획기적으로 직원들의 근무시간을 바꾸고 모든 직원들에게 집의 부인만 빼고 모든 것을 다 바꿔야 한다는 경영철학을 선포했었다. 이것은 삼성과 거래업체 및 은행들의 입장은 무시한 채 독자적으로 결정된 것이었다. 90년 초·중반에 미국은행 서울 지점장으로 근무할 때 있었던 얘기다. 이건희 회장이 반도체 호황으로 번 돈으로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 때 그 해 12월 초에 외국은행에서 차입한 그 많은 원화 대출금을 1~2주 내에 조기 상환하면서 새로 신설되는 자동차 회사에 대출해 달라는 일반적인 요구에 당황한 적이 있었다. 아무리 전자회사에서 큰 이익금을 냈다고 해서 임의로 조기상환 및 대출선을 지정하는 것은 기본적인 상거래의 윤리가 부족한 것이라 실망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전자회사의 회장, 사장 및 임원들이 반도체 호황으로 수십억씩 상여금을 지불했다는 것이 신문지상에 발표됐을 때 많은 동료 외국은행 책임자들의 곱지 않았던 의견에 특별히 반대할 수 없었던 일이 생각난다. 성장의 동반자인 은행의 공헌을 인식해 주는데 특히 인색했었던 시절이었다.

3세 이재용씨가 조만간 그룹을 계승한다고 한다. 새 오너 회장이 될 이재용씨가 그룹 내에 뿌리를 깊게 내리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노력과 희생이 따라야 한다고 본다. 얼마 전에 신문에 보도된 계열사의 주식 매입 과정에 어떤 의혹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필자는 알 수 없으나 돈 버는 데만 초점을 두었기 때문에 불거진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이제는 돈 버는 기업에서 존경받을 수 있는 기업이 될 수 있도록 그룹의 경영철학을 정작 바꿨으면 하는 바람이다. 필자가 지난 20여년간 삼성과 은행거래를 하면서 교분을 쌓았던 삼성맨 중에서 이런 철학을 갖고 있는 유능하고 소중한 인재들이 아직도 요소 요소에 많이 있다고 보기에 이재용씨에게 많은 힘이 되리라 믿고 있다. 구태의연했던 YES-MAN을 키울 것이 아니라 이제는 정말 소신과 창의력이 있는 인재를 등용시켜야 된다고 본다.

IMF 이후 우리의 경제는 만신창이가 됐고 수많은 재벌기업들이 도산과 더불어 한국의 자존심이 땅에 떨어졌다. 삼성그룹은 1세 오너인 이병철 회장의 소원대로 현대그룹을 제치고 근자에 명실공히 제계 1위 자리에 올랐다. 3세 오너인 이재용씨는 젊은 나이에 명문 하버드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미국 유수 기업들도 수많은 실수와 더불어 윤리도 가끔 져버린 적도 있지만 기본 청교도적 윤리정신이 있었기에 꾸준히 세계를 이끌어 가는 기업으로 명분을 유지하고 있다고 본다. 우리도 언젠가는 세계에서 존경받을 수 있는 기업-삼성그룹뿐 아니라 다른 기업도 탄생되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IMF로 인해 실종된 한국의 자존심을 되찾을 수 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로 인해 미국 및 해외에 살고 있는 수백만 한인 동포들의 위상도 높아지겠고 더구나 앞으로 이곳 2세, 3세들에게도 강력한 힘을 줄 수 있는 훌륭한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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