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일 ‘이주 노동자의 체류신분 보장과 노동권 보장을 위한 평화 대행진’이 있었다.
4,000명이 넘는 참가자들이 LA의 중심지에서 대사면을 외치며 약 한 시간에 걸친 가두행진을 가졌다. 이어 노동자들과 노동단체 인사들의 사면 관련 연설을 듣는 시간이 있었고, 흥겨운 음악과 거리 청소를 끝으로 뜻깊은 노동절 행사는 막을 내렸다.
성대하게 치러진 행사였다. 이름난 정치가가 앞장선 행사여서도 아니었고, 유명한 후원단체의 든든한 재정적 지원에 의해 치러진 행사여서도 아니었다. 실질적으로 노동을 제공하고 있으나 체류신분의 문제로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가장 어두운 곳에서 온갖 부당함을 혼자 삭여야 했던 이주 노동자들 스스로에 의해 조직된 행사였기에 그 어떤 행사보다 성대하고 뜻깊게 여겨졌다.
그러나 May Day를 기념해 벌어진 이 날의 행진에 참여한 한국인 노동자는 단 둘이었다. 한때 식당 일을 같이 했던 이양과 내가 그 둘의 전부였다. 내가 속한 ‘식당사람들’에서는 이번의 행진이 있음을 알리는 전단을 약 한달 전부터 타운 안 식당들에 배포해 왔었다. 만나는 식당사람 하나하나를 붙잡고 사면의 필요성을 힘주어 얘기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정작 행사 당일 참가한 한국인 노동자의 수는 나를 제외하면 단 하나, 단 하나였다. 무엇이 문제인가?
행사장에 준비된 임시 단상 위에 올라가 대열을 지켜보았다. 차도를 가득 메운 라티노 노동자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이 외치는 힘찬 구호소리를 들으며, 부딪쳐 당당히 요구하고 해결하기보다, 오히려 편법과 금전을 이용해 문제를 피해 가고자 하는 한국인의 삶의 자세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조금은 더 가지고 있기에, 조금은 더 배웠기에, 나 아닌 자를 쉽게 무시하고, 가진 것과 배운 것을 이용해 속이고 피해 가는 삶의 자세에 말이다. 어쩌면 타인의 희생에 의해 얻어진 성과를 조용히 기다리고 앉아 있다 함께 얻어가겠다는 지극한 ‘이기’ 때문일까? 뛰어드는 자의 ‘인내’는 이루어짐을 위한 계획과 이를 위한 부단한 노력의 시간을 의미하는 것인 반면, 그저 앉아 기다리다 함께 얻어가겠다는 자의 자세는 ‘인내’라기보다 ‘이기’에 가까우니 말이다.
흩어져 존재하는 천의 대중은 모든 어려움과 두려움 앞에 지극히 나약하나, 하나로 뭉친 열의 노동자는 그 어려움과 두려움을 딛고 거대한 진보를 일굴 수 있다는 믿음으로 물결치듯 모여든 색이 다른 사람들, 말이 다른 사람들, 그을린 얼굴의 라티노 형제, 자매들. 지난 5월1일은 그들 환한 얼굴 얼굴들에서 더더욱 현명한 삶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던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아직도 타운에 거주하고 있는 많은 한인들이 245(i)의 환상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현실적으로 245(i)에 의해 체류신분이 보장될 한국인은 거의 없다. 부시가 연장을 요청한 이 법안은 연장 여부와 무관하게 거의 모든 불법체류 이주 노동자들에게 체류신분의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무용지물인 셈이다. 사실상 사면안인 HR500 법안의 적극적 지지보다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245(i)에 더욱 열렬한(?) 관심을 표하는 한국인들의 자세에 어떠한 이성을 기대해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