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파국으로 달리는 ML호

2001-05-0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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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러시엄

▶ 박덕만 <편집의원>

지난 주말 몇건의 야구관련 뉴스가 눈길을 끌었다. 옆집 아저씨 같은 인상의 텍사스 레인저스 자니 오츠감독이 사표를 냈고 LA다저스가 왼손투수 칼로스 페레스를 방출했으며 제시 벤추라 미네소타 주지사가 조지 스타인브레너 양키스구단주에게 사과 편지를 보냈다.

오츠의 사표는 앉아서 해고당하느니 미리 던지고 말자는 뜻에서 낸 것이니 "잘렸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오츠감독의 운명은 사실 지난 오프시즌 레인저스가 프리에이전트 유격수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메이저리그 사상 최고- 아니 세계 스포츠사상 최고액수인 2억5200만달러 10년 계약을 맺었을 때 이미 정해졌다고 보는 것이 옳다.

레인저스는 전통적으로 피칭보다 타격이 강한 팀이다. 다시 말해 투수진이 약하다는 뜻인데 약점을 개선할 생각은 않고 강점을 더 보완한 것이다. 물론 로드리게스의 마케팅효과는 상당하다. 올시즌이 시작되자 팬들이 레인저스의 구장 ‘더 볼팍’을 가득 메웠다. 그러나 시즌이 시작되고 한달이 지나면서 레인저스가 12승17패라는 구단 사상 최악의 시즌 출발을 보이자 팬들은 분노하기 시작했다.


팬들을 달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한다. 이런 일에 선수가 책임을 지는 경우는 없다. 구단주가 책임을 지는 경우도 없다. 단장이나 감독중 하나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덕 멜빈 단장은 구단주 탐 힉스의 심복이다. 타격보다는 투수보완이 시급한 구단실정을 잘 알면서도 구단주의 뜻을 헤아려 로드리게스 계약을 성사시킨 인물이다. 제갈량이 아닌 힉스 구단주도 ‘읍참마속’의 결단력이 없는 사람. 결국은 무고한 오츠감독이 희생당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오츠는 부임 2년째인 96시즌 90승72패의 전적으로 레인저스를 사상 처음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고 아메리칸리그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한 명장이다. 97시즌엔 선수들 부상이 겹쳐 부진했으나 98, 99시즌 2년 연속 디비전 챔피언에 올랐다 - 피칭스탭이 약한 탓에 두 번 모두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뉴욕 양키스에게 싹쓸이는 당했지만. 2000년 시즌 레인저스가 디비전 4위로 저조해지자 힉스 구단주는 돈주머니를 크게 풀어 로드리게스와 켄 캐미니티, 안드레스 갈라라가등 프리에이전트 강타자들을 데려왔으나 제 아무리 2억5200만달러의 선수라고 해도 팀방어율이 6이 넘는 팀에서 승리를 만들어 낼수는 없는 법이다.

페레스는 지난98년 다저스가 엑스포스에서 트레이드해온 선수로 3년간 1,560만달러 계약을 맺었으나 단 한번도 제구실을 못했다. 페레스는 올시즌 단 한 개의 공도 던져보지 못하고 쫓겨난 신세지만 다저스로부터 750만달러라는 거액의 연봉을 지급받는다.

벤추라주지사의 사과는 이틀전 미네소타 트윈스구장 메트로돔에서 있었던 소동 때문이었다. 미네소타 팬들이 과거 트윈스의 스타플레이어였다가 프리에이전트가 돼 뉴욕양키스로 떠난 척 나블락에게 핫덕과 동전,플래스틱 맥주병,골프볼등을 마구 집어 던지는 바람에 경기가 두차례나 중단되고 몰수게임 일보직전까지 갔었다.

3건의 뉴스 모두가 프리에이전트제도와 관련이 돼있다. 메이저리그 프리에이전트 계약제도는 마치 제동장치가 고장난 ‘런어웨이 트레인’과 같다. 100만달러를 넘어선 것이 불과 10여년전인데 현재 2520만달러까지 치솟았고 앞으로 얼마나 더 올라갈지 모른다. 지금까지 야구장은 메이저 스포츠 경기장중 서민들이 찾아갈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는데 브레이크 없는 연봉경쟁이 계속되면 메이저리그가 결국 파국을 맞을 수 밖에 없다. 프리에이전트 계약제도에 대한 대폭수정이 불가피하다. 차라리 선수 개개인의 성적에 따라 연봉을 지급하는 성과급제도로 전환하는 것이 좋겠다.

강타자 로드리게스와 켄 그리피를 떠나 보낸 시애틀 매리너스가 올시즌 현재까지 메이저리그 30개팀중 최고의 승률을 자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구단주들이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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