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의 부부애 프로그램(ME) 지도자로 봉사하는 한 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 부부싸움이 화제로 올랐다. 부부가 평생을 살자면 부부싸움이 없을 수 없는 데 그 싸움을 지혜롭게 잘할줄 알아야 사이 좋은 부부가 된다는 것이 그 부인의 생각이었다.
60대에도 부부간 애정이 새록새록 샘솟는다는 이 부인의 부부싸움 방식은 특이했다. 부부가 싸움을 할 때면 반드시 손을 잡거나 어깨를 쓰다듬으며 싸운다는 것이었다.
“손을 맞잡고 어떻게 소리를 지르나, 어깨를 쓰다듬으며 어떻게 화를 내나”의아해했더니 이런 설명이었다.
“부부싸움이 대개 내용은 별게 아닌데 서로 감정을 건드려서 싸움이 커지지요. 손을 잡고 있으면 사랑이 전해져서 쓸데없이 흥분하지 않아요”
5월이 되면서 싱싱해진 초록의 산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안해진다. 하지만 막상 그 산으로 걸어들어가면 산은 평안한 곳만은 아니다. 가파른 길도 있고, 돌부리도 있고, 위험한 낭떠러지도 있다. 산을 바라만 보던 것을 연애라고 한다면 결혼은 ‘등산’이라고 할 수 있다. 직접 산속을 걸어보면 생각지도 못한 돌멩이에 채이기도 하고 나무가시에 찔리기도 한다.
친지중 오므라이스를 먹지 않는 분이 있다. 첫 부부싸움의 원인이 오므라이스 였기 때문이다. 신혼초 부인이 오므라이스를 만들었더니 남편이 맛있게 먹었다. “남편이 좋아하는 구나” 싶어 다음날도 또 만들었다. 남편은 또 맛있게 먹었다. 그래서 부인은 또 만들었고 …그런데 남편이 느닷없이 화를 낸 것이었다.
“얼마나 더 먹으라는 거냐. 기분 상할까봐 잠자코 먹어주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부인은 억울했다.
“오므라이스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서 나는 먹기 싫은데도 계속 만든건데. 그렇다면 왜 진작 그만 먹자고 말하지 않았느냐”
이런 귀여운 싸움에서부터 시작해, 전혀 다른 두 성인이 ‘일심동체’로 살아가자면 부딪치는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때마다 싸우자니 집안이 시끄럽고 참자니 속이 끓고…‘참을 것인가, 싸울 것인가’그것이 문제가 된다.
40대초반의 한 후배는 “무조건 참는 것보다 싸우는 게 낫다”는 의견이다. 평소 부부들 싸우는 게 보기 싫어서 의식적으로 그는 참기만 했다고 한다. 굳이 말 안해도 남편이 다 알려니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다.
“아무 말 안하니까 남편은 자기가 완벽한 남편인줄 아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는 싸움을 하는 한이 있어도 내가 할말은 다해요. 내가 너무 심했나 싶어 반성을 할 때도 있지요. 하지만 효과가 있어요. 싸우고 나면 그 다음날 남편이 달라져요”
결혼생활은 끈임없는 타협을 전제로 한다. 나는 냉면을 먹고 싶은데 남편/아내는 자장면을 먹고 싶다면 타협이 필요하다. 각자 의견을 내놓고 절충하면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냉면이냐, 자장면이냐’ 하는 사소한 문제로도 싸움이 되는 것이 또 부부관계이다. 그 마음의 가닥들을 짚어가보면 다다르는 곳은 모두 같다.
“내가 원하는데 좀 그대로 해주면 안되는가. 사랑한다면 왜 양보를 못하는가”
여자들은 특히 그런 마음이 강하다. 잘잘못을 떠나서 남자가 너그럽게 받아주기를 기대한다. 그런 관대함을 사랑의 증거로 생각한다. 반면 남자들은 또 그렇게 못하는 이유가 있다. 신문사 남자후배의 설명이다.
“자기 주장이 안 받아들여지면 남자는 체면손상으로 여깁니다. 이슈 자체는 뒷전이고‘나를 뭘로 알고…’식의 분노가 치솟는 것이지요. 부부싸움은 결국 자존심 싸움입니다”
오래 같이 산 부부들은 분위기가 푸근하고 비슷하다. 수십년 사는 동안 싸우고 타협하며 이견들을 좁히다보면 생각도 모습도 비슷한 닮은꼴이 되는가 보다.
적당한 싸움은 부부관계에 활력소가 될수 있다. 상대방에 대한 관심 표명이 되고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는 창구가 된다. 단 얼마나 잘 싸우느냐가 문제다. 사랑도 기술이고 싸움도 기술이다. 가정의 달을 맞아‘우리 부부의 싸움법’ 같은 걸 하나씩 만들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