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달은 국제적으로는 정찰기 충돌로 미중 관계가 마찰을 빚고 LA 지역에서는 시장 예선에서 비야라이고사가 예상을 뒤엎고 1등을 하는등 한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사건들이 일어났다. 본보 위원들간의 좌담으로 이 두 사건의 의미를 짚어본다.
▲옥세철 논설실장: 미-중 정찰기 충돌은 오히려 부시에게 여러 가지 플러스가 된 것 같습니다. 뉴욕타임스의 한 칼럼니스트에 따르면 중국을 가상의 적으로 보고 있는 부시 행정부의 강성 해외정책에 대해 따로 정부 차원의 홍보를 하는 노력을 많이 덜게됐다는 겁니다. 미 승무원 송환 협상과정 중 북경 당국이 보여준 태도는 현 중국이라는 체제의 성격을 잘 나타냈기 때문이라는 거지요. 또 승무원 송환 협상과정에서 보여준 부시의 태도 역시 국민들로부터 점수를 딴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상당히 성숙된 모습이라는 안도감의 표현 같습니다. 가령 클린턴 같았으면 빨리 사과를 하고 일을 끝냈을 텐데 사과를 안 했다는 점에서 평가를 받는 것 같습니다.
▲권정희 편집위원 - 부시행정부가 3월 한미정상회담에서 햇빛정책에 찬물을 끼얹더니 이번에는 중국과 또 냉랭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어요. 물론 양국 비행기 공중충돌사건이 계기가 되긴 했지만 그전부터도 미중 관계가 전 같지 않다는 것은 여기저기서 드러나고 있었지요.
▲민경훈 편집위원: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미중관계가 급속히 악화될 것으로 점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습니다. 클린턴도 92년 유세기간중 부시 행정부의 대중국 유화정책을 비판했지만 집권한 후에는 역대 어느 행정부보다 중국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미국은 미국대로 대기업들이 천문학적인 돈을 중국에 투자해놨고 중국은 중국대로 미국과의 외교적 마찰이 심각해져 수출길이 막히면 경제가 무너지기 때문에 어느 쪽도 좀 싸우는 척 하다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식으로 일정선을 넘지 못한다는 것이죠.
▲박덕만 편집위원: 미국민 과반수 이상이 부시가 미해군 정찰기 하이난도 불시착 문제의 처리를 잘했다고 보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지만 내 생각은 다릅니다. 조용히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를 외교에 미숙한 부시가 시끄럽게 만들었다고 봅니다.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 사람들의 입장을 조금만 고려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처음부터 엄포로 시작하는 바람에 문제가 커진 것입니다.
중국과 한판 승부도 불사할 것처럼 큰소리치더니 승무원들 석방을 위해서 중국측이 요구한 사과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더니 승무원들이 석방되자마자 태도를 돌변해 다시 미국이 잘못한 것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철없는 미국 국수주의자들은 좋아할지 모르지만 세계 최강대국의 대통령이 취할 태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어느 신문 만평에 권총을 휘두르는 보안관 차림의 부시 모습이 아주 어울리는 듯 합니다.
▲옥실장: 국가미사일방어(NMD) 계획이 부시 행정부 안보정책의 중심이 돼 있고 NMD 계획의 숨겨진 주 타겟은 중국이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 아닙니까. 이 NMD 계획을 밀고 나가기 위해서는 그러나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선 명분 축적이 중요합니다. 600억 달러의 예산이 드는 게 NMD 계획인데 이란이나, 북한의 미사일 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면 설득력이 모자라지요. 이런 면에서 군사적으로 강한 중국이 미국과 충돌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 이번 사건에서 새삼 제기됐고 또 중국은 미국민의 기준으로 볼 때 완강한 입장을 보여 이는 부시 행정부의 NMD 구축에 오히려 명분을 제공한 셈이지요.
▲권위원: 지난 12월 중국정보장교가 미국으로 망명을 했는데 그 뉴스가 나온 시점과 출처가 중국의 심기를 대단히 건드렸다고 합니다. 지난달 첸치천 중국부총리가 부시를 만나러 미국을 방문하려던 때 하필 타이완 신문에 의해 뉴스가 터져 나온 것이지요. 그 즈음 중국에서는 가족과 함께 중국을 방문중이던 중국계 미국인 여교수가 간첩혐의로 체포되었습니다. 미중 관계의 경직된 분위기를 보여주는 사건들이 여기저기서 터지고 있어요.
▲박위원: 체니, 럼스펠드, 파월 등 백전노장의 참모들이 도대체 어떻게 코치를 하고 있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어느 칼럼니스트는 대중국 외교문제에 있어서는 차라리 이들 참모들을 몽땅 쓸어버리고 아버지 부시에게서 조언을 받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주장하더군요. 부시 전 대통령이야 이들처럼 허장성세부터 앞세우는 극우 보수진영도 아니고 중국주재 외교관 경력이 있기 때문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지요.
대만 무기판매 문제도 매끄럽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동안 미국은 드러내놓고 대만을 돕지는 않는다는 입장을 취해 왔는데 새삼 이 문제를 공공연하게 떠듦으로써 중국을 자극시킬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잠수함 판매문제를 독일 등과 사전 협의하지 않고 발표함으로써 우방국을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만든 것도 외교적 미숙함을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옥실장: 이번 사건과 관련해 주목해야 할 점은 미국보다도 중국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상황 같습니다. 중화주의랄까, 내셔널리즘이랄까, 중국의 자존심이 상처를 받았다는 감정이 중국민 사이에 상당히 팽배했던 것 같아요. 이같은 내셔널리즘의 팽배 때문에 미 승무원 석방결정에 북경 당국이 상당히 곤욕을 치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과거 공산주의 체제에서는 이런 사건과 관련해 ‘민초의 의사’ 같은 것은 전혀 고려가 안됐지요. 말하자면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분노한 중국 인민’의 눈치를 보아가며 미 승무원 석방시기를 결정한 셈이지요. 이는 반대로 이야기하면 당과 정부의 통솔력이 약해졌다는 걸 의미합니다. 또 중국 군부의 입김이 아주 강하다는 사실도 노출됐습니다. 미국측 보도에 따르면 애당초 미정찰기와 중국 전투기의 공중충돌 사건이 났을 때 군부는 사실을 상당 부문 은폐하고 보고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전적으로 미국의 잘못으로 보고가 올라오니까 당 지도부는 그렇게 알고 대응했을 것이라는 관측이지요. 미 승무원 석방이 다소 지연된 것도 군부의 압력 때문이라는 지적입니다.
▲권위원: 부시행정부가 중국을 ‘전략적 동반자’가 아니라 ‘전략적 경쟁자’로 본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지요. 비행기 충돌 사건 후 중국의 감정을 고려해 타이완에 판매할 무기목록을 일부 수정하기는 했지만 NMD 체제 구축에 대한 결의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있어요.
▲박위원: NMD 문제로 러시아와의 관계도 서먹해지고 있는 마당에 중국과의 관계도 경직된다면 미국에 도움이 될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일부에서 의심하는 대로 정치자금을 대준 방위산업체들의 이익을 위해 냉전 분위기로 몰고 가자는 것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민위원: 미국은 앞으로 대만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할 것이 예상됩니다. 앞으로 미국의 제1 가상적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에 안성맞춤인 자리에 있을 뿐 아니라 주요 교역 상대국이고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는 나라이니 만큼 이를 중국의 침략과 위협으로부터 수호해야 한다는 명분도 있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적당한 수준의 무기를 팔면서 중국을 약올리는 카드로 사용할 것이 분명합니다.
▲옥실장: 중국의 언론 상황도 흥미를 끕니다. 사건이 나자 중국의 전 언론에 보도통제가 내려졌다고 해요. 신화사 통신만 받아 공중충돌 사건을 다루게 한 모양입니다. 이같은 보도 통제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민심을 너무 자극할 때 감당이 힘들다는 판단이 그 한가지 측면입니다. 미대사관 앞에서의 대대적 시위는 오히려 도움이 안 된다는 거지요. 또 다른 측면은 언론이 개방되면 그 자체가 자칫 체제에 도전이 될 수도 있다는 판단 때문인 것 같습니다.
▲권: 중국과 자꾸 감정이 나빠지면 그 불똥이 미국내 아시안들에게 떨어질까봐 제일 걱정이지요. 그러잖아도 중국계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상은 별로 좋지가 않아요. 중국계 단체가 지난달 설문조사를 했는데 중국계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상이 아주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어요. 비행기 충돌사건 전에 한 조사이니 지금은 더 나빠졌을 수도 있지요. 부정적 파장은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어요. 며칠전 남가주 온타리오에는 ‘중국제품 영구적으로 사지말자’는 빌보드가 세워졌어요. 한 개인이 수천달러의 돈을 들여 세웠는데 지지자들이 기금을 보내오면 계속 세워두겠다고 하더군요. ‘지나친 반응이다’는 의견들도 있지만 중국이 괘씸하다는 데 동조하는 의견이 많아요. 여론이란 게 원래 목소리 큰 쪽으로 몰리게 되어있는 것 아닙니까.
▲옥실장: 정찰기 충돌사태로 미-중 관계가 악화되자 입장이 난처해진 게 한국의 김대중 정부입니다. 햇볕정책이 실종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대해 부시 행정부는 그렇지 않아도 회의적 시각을 보이고 있는데 미-중 관계가 날로 냉각되면서 동북아 지역에 신냉전시대가 도래하지 않았나 하는 우려로 한국 정부는 상당히 당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월스트릿 저널은 ‘현 한국 정부는 미국이 NMD 계획 관철을 위해 한반도에서 평화를 원치 않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해 주목됩니다.
▲권위원: 미중 충돌이 미국에서 소수계로 살며 느끼는 불안을 조장했다면 LA시장 선거는 소수계로서의 희망을 보여준 사건이었지요. LA시에 히스패닉 시장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진 사실 자체도 의미가 크지만 비야라이고사 후보의 캠페인 전략도 눈여겨 볼만하다고 봅니다. 히스패닉을 중심으로 노동계, 진보적 백인세력을 끌어 들여 연대를 형성했는데 그게 힘을 발휘했어요. 앞으로는 이런 연대가 한 흐름을 형성할 것 같습니다.
▲박위원: "LA에 과연 130년만에 멕시칸 아메리칸 시장이 탄생할 것인가?" 지난달 10일 치러진 시장선거에서 안토니오 비야라이고사가 30%의 득표로 25%를 득표한 제임스 한을 제치고 선두에 오르자 던져지고 있는 질문입니다.
사실 LA에는 그동안 라티노 시장 배출을 위한 토양이 충분히 무르익었다고 생각됩니다. 남가주 5개 카운티의 라티노 인구는 40% 가까이 육박했고 2000년 센서스 결과 LA시의 인종분포는 라티노가 46%, 백인 32%, 흑인 12%, 아시안 11%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민 증가와 높은 출산율에 힘입은 인구 증가에도 불구하고 라티노 표의 힘은 아직 약합니다. 시민권자 비율이 높지 않고 투표 참여율 또한 낮기 때문입니다. 지난번 선거에서도 전체 투표중 라티노의 비율은 21%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비야라이고사의 선전은 라티노의 지지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고 밸리와 웨스트사이드 지역의 백인-특히 유대계의 표를 많이 얻은 덕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민위원: 이번 시장 선거는 두 후보 모두 백중세의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어 그만큼 한인들의 정치적 발언권도 커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수천표 차이로 승부가 날 경우 한인 표가 어디로 몰리느냐가 결정적 역할을 할 수도 있으니까요.
▲권위원: 히스패닉 시장 배출 토양은 10년전부터 가꿔져왔다고 봅니다. 90년대초 캘리포니아 공화당 주정부가 반이민정책을 밀고 나간 것이 결과적으로 히스패닉의 정치의식을 깨우쳐주었지요. 90년대를 거치며 투표율이 급속히 높아지고 정계진출도 활발해졌어요. LA시 선거만 보더라도 지난 93년 전체 투표자중 히스패닉이 차지한 비율이 8%였던 것이 이번에는 21%로 올라갔다고 해요. 주의회에서는 이제 워낙 히스패닉 의원이 많아서 회의중 영어로 말하다가 스페인어로 말해버리는 의원들도 있다고 합니다. 히스패닉 세 과시이지요.
▲박위원: 오는 6월 결선에서는 아버지인 고 케네스 한 LA카운티 수퍼바이저의 후광에 힘입어 흑인계 지지를 얻고 있는 제임스 한과 비야라이고사 두 후보중 누가 스티브 소보로프를 지지한 비유대계 백인표를 많이 얻느냐에 결과가 좌우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두 후보 모두 예선전의 한계를 뛰어넘을 필요가 있습니다. 비야라이고사의 경우 노조 지도자 출신이라는 이미지를 벗고 LA의 비즈니스 지도자들을 설득할 수 있느냐 그리고 아시안과 흑인 커뮤니티에 히스패닉만을 위한 정치인이 아니라 마이너리티 전체를 위해 일할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줄 수 있느냐에 당선 여부가 달려 있습니다.
▲권위원: LA에서 히스패닉이 주도권을 잡는 것은 이제 시간 문제라고 봅니다. 한인 커뮤니티도 밖으로 눈을 돌려서 이런 변화들에 지혜롭게 대처해야 하겠지요. 타 소수계와 연대해 미국내 소수계의 권익을 높이는 데 좀더 적극적이어야 나중에 외톨이가 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박위원: 제임스 한의 경우는 유권자들에게 그를 찍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려주어야 합니다. 시정 경험이 많고 온건 진보파라는 뜨뜻미지근한 정치적 이미지만으로는 더 이상 유권자들에게 어필할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 와중에 LA 경찰노조가 한을 지지하고 나선 것은 상당한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민위원: 이번 시장 선거에서 재미있는 것은 지난 번 한인회 선거 때 맞섰던 두 팀이 다시 둘로 갈라져 한 쪽은 비야라이고사를, 다른 쪽은 제임스 한을 지지한다는 점입니다. 사람들 면면을 보면 비야라이고사나 제임스 한의 정책이나 정치색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시장 선거 참여는 바람직하지만 정치 의식이 한 단계 높아져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