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뚜라미 한 마리가 3주째 부엌의 환기통 부근에서 지내왔다. 숨어 있어 한번도 모습을 보지 못했지만 이른 아침과 늦은 밤엔 어김없이 울어댔다.
가족이 모두 잠자리에 들어 쓸쓸함이 엄습하는 시간에는 귀뚜라미의 노랫소리를 벗삼는다. 그 소리도 다양해 어떨 땐 클래식의 선율이 부엌에 퍼진다. 피곤해지면 랩으로 바뀐다. 어깨춤을 가볍게 추면서 원기를 회복한다. 갑자기 고향친구들이 보고싶으면 학창시절 자주 부르던 뽕짝의 리듬이 상큼하게 귓가에 닿는다. 귀뚜라미는 이제 친구가 됐다.
지금 잡아죽이지 않으면 나중에 집안에 번져 골치를 썩일 것이라며 신속한 조치를 취하라고 충고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외로울 때 푸근함을, 고단할 때 생기를, 산란할 때 고요함을 선사하는 귀뚜라미에게 연거푸 감사해야할 처지다.
헌데 며칠전 귀뚜라미의 노래소리가 끊겼다. "이 놈이 다른 곳으로 떠났나" "이 녀석이 굶어 죽었나." 별생각이 다 들었다. 초등학교시절 영등포 논에서 인정사정 없이 메뚜기를 잡아, 프라이 팬에 튀겨먹던 것을 생각하면 비슷한 종류의 곤충에 지나친 정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귀뚜라미가 다시 찾아와 부엌을 작은 콘서트홀로 만들어 주어야 할텐데…"하는 맘뿐이었다. 간절함이 통했는지 하루만에 귀뚜라미가 돌아왔다. 죽마고우를 만난 것처럼 기뻤다.
그러나 반가움도 잠깐이었다. 이 녀석이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연주장소를 옮기기 시작했다. 식탁부근에서 울음소리가 났다. 고유의 영역이 침범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퀴벌레가 판치는 후덥지분한 텍사스 집 부엌들이 떠올랐다. 다정한 친구에서 경계의 대상으로 변했다.
다음날 귀뚜라미 소리는 식탁과 대각선 위치에 있는 아이의 방에서 들려왔다. 침대나 책상, 또는 책장 뒤 어디엔가 옹크리고 있을 게다. 오비이락일까, 딸아이가 가슴부위를 무엇인가에 물렸다. 가려워 긁었는지 부풀어 올랐다. 작년 여름 모기에 물린 뒤 이런 일이 없었기에 귀뚜라미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게 됐다. 순식간에 귀뚜라미와의 관계가 냉전체제로 돌입했다. 귀뚜라미가 제 자리를 벗어난 게 화근이었다.
최근 한국에 분노의 불을 지른 일본 역사왜곡의 불똥이 타운에도 떨어졌다. 일부 단체들이 ‘친일인사 명단’을 공개했다. 이들 단체는 그동안 커뮤니티 봉사는 물론 북한 돕기에까지 사랑의 손길을 뻗쳐왔다. 그래서 한인들이 이들 단체의 활동에 관심을 가져온 게 사실이다. 한인사회 발전에 꼭 필요한 단체가 돼 주길 바라는 기대도 크다.
하지만 ‘친일인사 명단’ 공개가 커뮤니티 화합을 저해할까 걱정된다. 친일행각은 반민족적 죄다. 그렇다고 과거를 들추어, 그것도 미국 땅에서 어쩌겠다는 것인가. 설사 ‘친일’과 관계가 있다손 치더라도 이를 반복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들 단체는 일부 인사들을 겨냥해 "친일행적에 대한 반성없이 항일구호를 외쳤다"고 비난했다.
누구에게 반성해야 한다는 건가. 교과서 왜곡문제가 불거져 나온 것과 때맞춰 수십년전 일에 대해 한인사회에 사죄 성명서라도 내야 한단 말인가. 반일 분위기에 역행해 일본을 두둔하는 발언을 했다면 몰라도, 왜곡문제를 계기로 항일구호를 외쳤다면 이를 ‘반성의 징표’로 볼 수 있지 않는가. 현재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없이 과거의 잘잘못을 따지면 감정의 골만 깊어진다. 시류에 편승한 오버액션은 부작용을 낳는다.
일본은 한민족에게 아물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역사왜곡이 한인사회에 또 다른 상처를 낼까 안타깝다. 이들 단체가 제자리로 돌아가길 당부한다. 종전대로 봉사와 화합에 힘써 주었으면 한다. 똘똘 뭉쳐도 만만치 않은 이민생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