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자들의 바지

2001-05-0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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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향민(영어음성학자)

아줌마라는 연속극이 화제 속에 막을 내렸다. 어찌 보면 그것은 새로운 시작인지 모른다. 왜냐하면 아줌마는 단순한 극이 아니라 여자들의 도전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용은 잘 알려진 것이라 이 곳에서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여자들은 승리감을 맛보았겠으나 그것을 바라보는 남자들의 심정은 드러내지 못한 심정이 있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여자들이 예전의 여자들이 아니다. 이미 여자 대통령이 있는 나라도 있고 장관 정도는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사회적으로도 그렇지만 집집마다도 여자들의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집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여자들은 케이오 행진을 거듭하는 도전자 같으며 남자들은 이미 전성기를 지난 챔피언 같다. 피할 수 없는 대결이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여자들의 반란은 모두 여자들이 바지를 입기 시작할 때부터 이미 예견되고 있었는지 모른다. 여자들이 바지를 입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 뉴욕의 젊은 여자들이 처음이었다. 이 당시 철저한 남성 우월주의자인 한 칼럼니스트는 여자들이 바지를 입기 시작한 것에 대해 남자들의 권위가 무너지고 있다고 개탄했다. 그나마 그 칼럼니스트를 위안한 것은 당시 여자의 바지는 개폐 부분이 앞부분에 있지 않고 옆이나 뒷부분에 있었는데 그것을 다행히 여기며 마지막 보루를 지키라고 남자들을 독려했다.

마지막 보루라던 바지의 정면 개폐는 이미 무너진 지 오래고 오히려 여성화해 가는 남성들, 그리고 여성이여 테러리스트 되라고 부추기는 세태를 보면서 칼럼니스트가 살아 있다면 어떤 심정이었을까 괜한 염려를 해본다. 그리고 그저 남자의 권위를 지키지 못하고 무너트린 세대에 속해 있다는 것만으로도 먼저 살다간 선배들과 그 칼럼니스트에게 괜스레 죄송스런 마음이 든다.

아! 여자들이 바지를 입는 것을 막지 못한 것이 남자들의 실수였는지 모른다. 미래는 어떤 상황으로 전개될까? 남자들에게 전혀 밝아 보이지 않는다. 여자들을 위해 축배를 들어주는 아량이나 보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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