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코리안 헤리티지

2001-05-02 (수)
크게 작게

▶ 김정섭 <특집부 차장>

미군 정찰기사건으로 미-중 양국간의 긴장이 고조되던 때의 일이다. 출근길에 뉴스 전문 라디오 방송에서 한 중국계 미국인의 중국 비호 발언을 듣고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해 봤다. 발언의 골자는 ‘중국은 자치국가로 주권을 지킬 의무가 있다. 미국은 정찰활동을 중단해야 한다. 이번 사건의 중국측 대응은 정당했다. 미국은 사과해야 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이 발언을 ‘표현의 자유’와 ‘진정한 애국심’ 두 가지로 측면으로 분석해 볼 수 있다. 월남전 반대 데모 때처럼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자유는 있다. 그러나 전면전이 아닌 단순 정찰활동으로 인한 양국의 ‘기싸움’에서 그것도 중국계 미국인이 중국을 옹호하는 주장을 펴고 있다는 사실이 같은 소수계로서도 듣기가 썩 좋지는 않았다. 극단적으로 "미국과 중국이 전면전을 벌인다면 누구편이 될까"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수년전 스파이 혐의로 수감된 한 한국계 미국인(그는 이민 1세였다)을 돕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그를 돕자는 취지의 안내서에는 한국을 도우려다 수감된 그를 당연히 우리가 도와야 한다고 되어 있다. 미국 국민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는 분명 애국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를 도와야 하는 이유가 동정적 여론이나 결백을 주장하는 차원이라면 좋다. 그가 조국을 도우려 했다고 우리가 구명운동에 동참해야 한다는 호소는 이곳 상황에서 맞지 않는다.


LA타임스가 백인 우월주의자의 중견 간부를 인터뷰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자신은 인종주의자는 아니지만 독일계 미국인(German American)으로서 독일 문화권(Heritage)에서 자라나 그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것뿐이라는 것이다. 다인종 사회의 미국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아이덴티티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지 결코 인종주의자는 아니라는 말일 것이다. 궤변이겠지만 그냥 지나치기에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는 한인 2세들에게 어떤 정체성을 가르치고 있는가.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키우는 것은 아닌지 뒤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이곳에서 계속 살아야 할 2세들이 자랑스런 한인 문화권(Korean Heritage)에서 자라나 미국 국민으로 당당히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주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냄새나는 된장찌개를 향긋한 토속 음식이라고 자랑하며 타인종 친구들에게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 후손으로 키우고 있는지 자성해볼 시기가 된 것 같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