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45(i)가 뭐길래

2001-05-0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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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경력 20년이 넘는 A씨는 개업한 이루 지난 수개월만큼 바빠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아침부터 밤까지 수백통의 문의 전화에 시달린 후 주말에도 집에 서류를 뒤적이느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해 틈만 있으면 졸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달 들어서는 오랜만의 한가로움을 즐기고 있다. 다 245(i) 조항 때문이다. 취업이나 가족이 있는 경우 불법체류를 했더라도 벌금만 내면 미국 내에서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도록 허용한 이 조항 효력이 4월 30일로 만료되면서 엊그제까지 불이 나던 전화통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이 조항이 발효된 지난 4개월 동안 이 법규에 의거해 영주권을 신청한 사람은 전국적으로 60만명. 94~97 3년간 같은 조항에 의거해 영주권을 신청한 사람이 54만명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기록적인 숫자다. 아무리 국경을 단속해 봐야 밀입국자수는 늘어만 간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한인들 숫자는 LA에서만 수천명, 전국적으로는 1만명이 훨씬 넘을 거라는 게 관계자들 얘기다. 대부분은 관광이나 방문으로 와 주저앉은 경우지만 젊은 여성 가운데는 캐나다로 넘어온 케이스도 뜻밖에 많다고 한다.

신청을 했다 해서 반드시 합법 체류 자격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족 초청인 경우는 기다리면 나오지만 대기기간이 갈수록 길어지고 있어 영주권자 배우자는 6~7년, 시민권자 형제자매는 15~20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취업이민인 경우는 나올지 안나올지도 불확실하고 잘못하면 이민국 단속에 걸려 추방될 수도 있다. 실제로 오하이오에서 이민국 직원이 신청한 사람이 제공한 정보를 근거로 해 불법체류자를 체포한 사건도 발생했다. 이민단체의 항의에 따라 중지되기는 했지만 법적으로는 단속을 해도 할 말이 없다.


최근 245(i)를 한시적으로 할 것이 아니라 1년 연장하거나 아예 영구화하자는 움직임이 연방의회에서 일고 있다. 멕시코와 친한 부시 대통령이 이를 지지하고 있어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는 소식이다. 245(i) 연장이나 불법체류자 사면등 이들의 신분을 합법화하자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반대자들은 그렇게 하면 밀입국을 부추기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900만에 달하는 인간이 계속 지하에서 생활하도록 놔두는 것은 사회적 안정이나 인도적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허드렛일을 하는 막일꾼에서 농장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불법체류자가 미국 경제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도 무시할 수 없다. 그늘에 숨어사는 이들의 체류 신분 합법화 움직임은 올바른 방향으로의 첫걸음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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