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기 스스로의 인종차별

2001-05-0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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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워드 권 <교육인>

라디오서울, KTAN TV 주최 뉴서울관광 후원의 동부 명문대학 탐방에 다녀왔다. 3·4차 53명의 동포 꿈나무들을 인솔하고 벚꽃이 만발한 동부의 8개 대학을 둘러보았다. 매서추세츠 공과대학(MIT) 대학원 학생의 84%가 세계 각국에서 온 학생들이라고 하니 어느 하버드 학생이 말했다는 ‘세계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문구가 실감이 난다. 세계가 로마로 향했듯이 바야흐로 세계가 미국의 대학으로 향한다는 것이다.

졸업생으로 언론 재벌인 마이크 부름버그가 기증한 존스 홉킨스 대학의 과학관은 세계에서 제일 성능이 좋은 망원경을 자랑하고 있고 책 수집광이었으며 타이태닉호 사건으로 사망한 아들 헨리 와이드너를 기리기 위해 어머니 와이드너 여사에 의해 건축된 하버드대의 와이드너 도서관은 미국의 국회 도서관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도서관으로 1,300만권의 장서를 자랑하고 있다. 죽은 아들을 추모하기 위해 건축 당시부터 오늘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아들의 초상화 앞에 생화를 준비하게 끔 한 한 어머니의 뜻이 훌륭하기만 하다.

식민지 미국이긴 했지만 두고 온 영국, 독일의 명문대학을 본보기로 지은 동부의 명문대학들은 설립 당시부터 성공한 독지가들에 의해 설립, 유지되어 왔고 수백년 동안 독립된 미국, 그리고 나아가 세계를 리드하는 인재들을 양성해 왔으니 돈은 어떻게 벌었던 간에 귀하게 쓰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한다. 찾아온 동포 후배 학생들을 위해 바쁜 학교생활을 마다 않고 5명의 한인 재학생들이 좌담회를 열어준 유·팬과 하버드 대학의 모임은 감동의 연속이었다.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가는 명문대학의 아시아계 학생들의 수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 전국 나아가 세계 최고의 우수한 젊은이들로부터 최고의 학생들을 선발하는 이 대학에 우리들의 꿈나무들의 수가 늘어만 간다는 사실은 민족의 우수성 그리고 뒷받침하는 우리 부모님들의 헌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For God, for country, and for Yale"이라는 예일대학의 모토와 같이 하느님 앞에 정직하고 헌신하는 인간으로 나라와 모교를 위해 일할 이들 젊은이들을 생각하면 우리들의 미래는 밝기만 하다. 대학들을 방문하는 동안에 어느 백인 학생이 대학 신문에 아시아계 학생들을 비방하는 글을 기고해 뜨거운 논쟁이 있었다. "아시아계 학생들은 끼리끼리 모여 자신들의 언어를 쓰며 그들만의 음식을 해 먹으며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차별하고 있다"는 말하자면 Self-Segregation 자기 차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글을 실은 신문을 성토하게 되었고 뭉쳐서 싸우는 아시아계 학생들 때문에 결국은 신문도 사과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하버드 대학의 재학생 5명과 가진 좌담회에서 필자가 이 문제를 제기하자 패사디나에서 온 중국계 학생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들은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한 곳에 모인 이 곳에서 그들과 사귀며 배우기 바빠 인종문제 같은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다. 끼리끼리 모여 살아가는 것도 개인의 자유가 제공하는 선택일 수도 있으나 이것이 여러 민족이 모여 사는 곳에서는 자기 차별-Self-Segregation으로 이어질 수는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학교에 근무하고 있을 당시 벌을 받고 불려온 한인 학부모님들이 "우리가 한국사람이라고 더 심한 벌을 주는 것 같다"고 하며 차별 운운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 스스로를 다른 인종으로부터 격리하며 우리끼리만 모여 살면서 문제가 있을 때 차별 운운하는 것은 아닌지.

지금 생각해 보면 단일 민족이 모여 사는 한국과는 달리 다민족이 모여 사는 미국에서 우리끼리 모여 산다는 것은 자기 차별의 오해를 가져올 가능성을 생각하게 한다. 끼리끼리 모여 살면 편하긴 한데 다민족이 서로 어울려 경쟁하는 ‘큰 연못’으로 옮아가는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면 한인들만의 ‘좁은 연못’을 한번 더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많은 부모님들의 권유에 따라 어정쩡한 마음으로 나섰던 동포 학생들이 여행을 마치는 마지막 날 평가회에서는 자못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고 나름대로 지망하고 싶은 학교를 말하는 것을 보면 역시 ‘Seeing is believing’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짧은 기간에 여러 학교를 보느라고 몸은 피곤했지만 많은 것을 보고 배워 가지고 돌아오는 우리들의 꿈나무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기쁘고 푸근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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