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폴리스맨의 아버지

2001-05-0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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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상<수필가>

"내가 커서 경찰관이 되면, 아빠 속도위반 티켓을 떼겠어요" 작은 아들이 초등학교 저학년 때 교실 책상 위에 써 놓은 장래 희망사항이었다. 다른 아이들도 가수, 야구선수 정도였지 우리들 어린 시절처럼 대통령이 되겠다는 아이는 물론, 한인 부모들의 소망인 의사 변호사가 되겠다는 아이는 없었던 것 같다.

그 시절 아들은 계집아이처럼 예쁜 얼굴에 마음도 여렸기 때문에 용기의 상징이랄 수 있는 폴리스가 되겠다는 것은 이해가 되나, 강아지처럼 졸졸 아빠를 따르던 아이가 티켓을 먹이겠다는 대목은 정말 뜻밖이었다. 아들은 고등학교 때 체력으로나 재간으로도 밀리는 풋볼 팀에 들어갔는데 졸업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버틴 것은 자신의 여린 심성을 극복하려는 오기였던 것 같다.

진화론까지 내세우며 교회 가길 거부하다가 야단 맞는 형을 보고는 벌써 차에 타고 있던 작은 아이, 그런 자신의 나약함이 싫었던지 백인 우월주의 학교에서 학생회장에 나서고 무난히 회장직을 해낸 것도 강인한 성격을 쌓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던 것 같다. 대학에서는 정치학과 사회조직학을 전공하더니 드디어 경찰관이 되겠다고 나섰다. 처음엔 농담인줄 알았다. 하느님은 남을 돕고 살라지 않았느냐, LA, 샌프란시스코 시장도 경찰 출신이라면서 오히려 말리는 가족들을 설득하려 들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보기엔 건성건성 살아온 듯 한데 자신은 나름대로 꿈을 키워 온 모양이다.


도시 별로 채용시험이 있었지만 아이는 오클랜드 경찰국만을 고집했다. 다행히도(?) 60여명 뽑는데 2,700명이 응시했다니 제깐 놈이 될 법이나 하겠는가. 그러나 필기, 체력, 신체, 적성, 배경조사까지 8개월 동안이나 시험에 시달리면서도 도무지 포기할 기세가 아니었다. 모든 시험과 검사에서는 이상이 없는데 여린 심성이 마지막 관문인 것 같다. 결국 3명 의사의 최종 면담을 끝으로 합격되었다.

44명이 경찰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경찰관이 되던 날, 6개월간의 교육훈련과정을 비디오로 보여 주었다. 육체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혹독한 지옥훈련을 혼신의 힘으로 견디어내는 아들의 모습을 보는 필자의 가슴은 저려왔다. 한밤중 아들 돌아오는 소리를 듣고서야 깊은 잠에 들게 되고, 어디서 사고가 났다면 가슴이 뛰곤 한다. 처음 보는 손님인데 "아드님 일 잘하고 있습니다" 사복 경찰인 듯한 신사가 눈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가던 날도, 저만치 가던 경찰 차가 뒷걸음질쳐 내 앞에 서면서 안녕하세요 사이몬 아버님. 아들의 선배 경찰관이 손을 흔들며 사라진 날도 종일 기분이 좋았다.

아들이 경찰이 된지 일년이 되었다. 18년 전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 왔을 때는 하나뿐인 동양인 집이라 그런지 가끔 차 유리창도 깨어 놓고 휴지도 산같이 잔디에 감아놓곤 했다. 초등학생이던 아들은 야구방망이를 들고 범인을 잡겠다고 설쳐대곤 했는데, 며칠 전에는 길옆에 세워둔 차에 누군가 계란을 던져놓고 갔다. 아들에게 경찰관도 별 수 없네. 우리 집 차에 계란 던진 걸 보니. 약을 올려 보았더니 제 차에도 그랬던 걸요. 아이들이 한 짓 같은데 별 뜻 아닌 것 같아요. 뜻밖에도 대범해진 대답이다. 지금 순찰하고 있을 아이의 방으로 들어가 컴퓨터 위에 놓인 기도문을 읽어본다. 주님, 강인한 얼굴, 두려움을 극복하는 용기를 주세요.

듬직한 체격의 아들은 아직도 거미 한 마리 죽이는 데도 멈칫 한다. 맹렬한 노력에도 변하지 않는 선한 마음, 그리고 반듯한 성격이 행여 힘들지라도 변질되지 않고 경찰의 임무를 끝까지 수행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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