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랑하면 장관돼요

2001-04-2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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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주<수필가>

얼마 전 뉴욕타임스에 올해 미국 법과대학에 진학하는 여학생이 정원의 절반을 넘어설 것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법대에 진학하는 여학생 수의 증가는 미국의 정재계 엘리트 계층구조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여성들에겐 참으로 고무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 한국의 여성계도 요즘 여성 파워가 닻을 올린 기분이 들만큼 신나는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월 정부 수립 후 최초로 여성부가 신설돼 초대 장관에 한명숙씨가 임명됐고, 얼마 전에는 부시 행정부 노동부 여성국장에 전신애 일리노이주 노동장관이 등용됐다는 쾌보가 연이어 터졌으니 말이다.

전신애 장관은 96년에 ‘뚝심 좋은 마산색시 미국장관 10년 해보니’라는 책을 출간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분이다. 남편과 동성동본이라 집안에서 결혼 허락을 받을 수 없어서 어머니가 몰래 마련해준 50달러를 들고 미국으로 도망쳐 결혼했다는 ‘아메리칸 드림’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남편 외조로 공부를 마친 후 84년 주지사 특별보좌관에 임명된 이래 91년 주노동장관에 올라 99년까지 장수했다.


나는 그런 전 장관을 몇 년 전에 만난 적이 있다. 그때 전 장관은 한인들의 미국사회 진출을 어렵게 볼 필요가 없다면서, "정직하게 열심히 일하면 인정받을 수 있다.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에 적극 참여하고 봉사하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었다. 작은 체구에 마음 좋게 생긴 전 장관은 소박한 한국 여성의 모습 그 자체였다. 그 부드러움 속에 어떻게 미국 정부기관의 고위 공직자가 되는 힘이 있었을까.

우리 한국 여성의 힘은 얼마 전 뉴욕을 방문했던 한명숙 여성부장관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한명숙 장관을 처음 대면했을 때 나는 가슴이 뛰었다. ‘장관답지 않게’ 미인이었기 때문이다. 미녀대회의 인형 같은 미인이 아니라 지성과 품위가 몸에 밴 고요한 동양의 미녀, 한 장관이 바로 그랬다.

한 장관의 개인사를 접해 보면 그 아름다움은 그냥 나온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민주투사에서 여성학자로, 여성운동가로, 정치인에서 드디어 여성 각료로 변신한 그 분의 개인사 자체가 한국 현대사에서 지니는 의미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이화여대 불문과 재학 시절에 만난 남편 박성준(신학박사)씨와 4년 열애 끝에 1967년에 결혼했다는 한 장관은 신혼 7개월만에 통혁당 사건으로 남편이 투옥되자 독수공방 신세가 되었다. 그로부터 14년, 24세였던 새색시는 어느덧 중년이 되었다. 그 깊고 진실한 사랑 이야기에서 전신애 장관과 한명숙 장관은 꼭 닮았다. 사랑을 해야만 장관이 될 수 있는 것일까.

크리스천 아카데미 간사로 활동하며 남편 옥바라지를 하던 한 장관은 1979년 자신도 2년반 동안 투옥생활을 했다. 어느 여성지 기사에서 한 장관은 "암울했던 시절, 남편을 14년간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하고 말했다.

여성운동가라면 흔히들 자기 주장이 강하고 남자들 같은 투사라는 편견을 갖고 있는데, 한 장관은 그런 사람들의 편견을 보기 좋게 깬다. 지극히 여성다우면서도 자신의 의견은 꿋꿋하게 지킬 줄 아는 지혜와 포용력을 지니고 있었다.

실로 여성의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자신이 어느 자리에서건 자신의 역할을 분명하게 하면서도 여성으로서 고유한 아름다움과 향기를 잃지 않는 것.

한 장관 역시 취임 후 "단순히 여성차별 개선이나 지위향상 뿐만이 아니라 여성문제를 긍정적인 이슈로 부각시키기 위해서 노력하겠습니다. 여성들이 일방적으로 달라고만 요구하는 게 아니라 같이 살자. 우리도 할 수 있다.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라고 역설했다.

오랜만에 자랑스런 우리 여성들을 보면서 가슴이 뿌듯했다. 그러나 그들만큼 아름다운 여성은 얼마든지 더 있다. 머나먼 땅 미국에 와서 남자들과 똑같이 힘든 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뉴욕의 여성들, 남편과 자녀를 열심히 지키며 가족의 미래를 헤쳐나가는 뉴욕의 보통 여성들이 모두 아름답다. 뉴욕의 한국동포 여성들, 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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