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부처님 오신 날 생각나는 일

2001-04-2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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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석렬<언론인>

구경 삼아 찾아간 곳이 여덟 군데였다. 자동차로 장장 2,300마일 길을 다녀왔다. 모두 미국 원주민들의 보호지역으로 애리조나의 캐년 드 셸리에서 시작하여 유타의 아치즈 국립공원까지 이르는 동안 사이사이에 펼쳐진 명소들을 돌아봤다.

이른바 ‘인디언 컨트리’로 불리는 땅인데 나바호, 호피 그리고 아파치족들의 고장으로 수천년 전부터 대대로 이름은 다를지언정 인디언들의 삶의 터전으로 삼아온 곳이다. 대부분 바위산과 깊은 계곡이 이루는 절묘한 풍경과는 달리 사람이 살기에는 별로 적합하지 않은 곳이다.

우선 사막성 기후로 낮과 밤의 기온 차이가 심하고 비가 거의 오지 않아 땅이 메마른 불모지였다. 물이 워낙 귀해 주민들은 먼 데까지 차를 몰고 가 탱크에 물을 받아다 쓰고 있고 호롱불로 밤을 밝히는 ‘원시적이 상태’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떠나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그들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아버지 하늘과 어머니 땅의 품속의 따듯함을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기 때문이란다. 이들에겐 삼라만상이 모두 형제자매요 친구인 것이다. 부득이 먹기 위해 짐승을 죽이지만 꼭 필요한 만큼만 잡는다고 한다.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어떤 종족은 내세를 위한 게 아니라 현세만을 위한 종교를 믿는다고 한다. 전지전능한 신을 믿지 않는다. 불교의 리얼리스트 사상과 일맥상통한다고 할까. 때를 격하지 않고 과보가 있다는 가르침과 같지 않은가.

어쨌든 궁색하면서도 궁색함이 없는 인디언들의 넉넉한 마음이 곧 해탈의 경지라고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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