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포르노 네이션

2001-04-2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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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부터 ‘영웅호색’이란 말이 있다. 권력을 잡은 사람 치고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이 드물다는 얘기다. 이 말을 만든 것은 중국인이지만 바다 건너 미국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이웃집 유부녀를 연모한 워싱턴에서 흑인과의 사이에서 사생아를 낳은 제퍼슨, 역시 사생아를 낳은 클리블랜드, 정부를 수시로 백악관으로 불러들인 하딩, 아예 비서를 정부로 삼은 프랭클린 루즈벨트, 성문란의 극치 케네디, 조용했지만 그에 버금갔던 존슨등등 대통령 가운데 성추문에 시달린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바람 피우다 제일 혼이 난 사람은 물론 클린턴이다. 르윈스키와 불륜을 저지른 후 오리발을 내밀다 탄핵 당해 쫓겨나기 일보 직전까지 가는 수모를 겪었다.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빗과 전용기 에어 포스 원에서 클린턴이 모아 두었던 포르노 테입이 무더기로 발견됐다는 소식이다. 부시 대통령은 이를 즉시 폐기처분하라고 명했다고 한다. 포르노를 보는 것은 자유지만 일국의 대통령이 국민이 낸 세금으로 생활하면서 별장과 전용기에서 포르노 테입을 즐겼다는 것은 좀 심한 느낌이다.

따지고 보면 클린턴만 탓할 일도 아니다. 바야흐로 지금 미국은 포르노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각 분야에서 경기 침체 조짐이 보이지만 포르노업계만은 무풍지대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닷컴 거품이 꺼지면서 인터넷을 비롯한 하이텍 업계 전체가 고전하고 있지만 온라인 포르노 산업만은 예외라고 전했다. LA 타임스도 닷컴 붕괴로 갈 곳을 잃은 하이텍 근로자가 경기 좋은 포르노 업체로 몰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 미국의 포르노 사이트 정기 방문자는 전체 네티즌 20%인 2,800만명으로 추산된다. 지난 1년 사이 27%나 증가한 수치다. 펜트하우스는 올해 수익률이 200% 늘어날 것이라며 희희낙락하고 있다. 미 포르노 산업 규모는 연 매출 100억달러. 연 40억달러어치의 포르노 테입을 구입하며 인터넷의 섹스 사이트는 6만개로 어떤 분야보다 많다.


포르노 산업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더 이상 이름 없는 군소업체들이 아니다. 세계 최대의 포르노 공급 업체는 GM이다. 자회사인 디렉트 TV를 통해 870만명의 미국인에게 연 2억달러 어치의 페이-퍼-뷰 포르노를 팔고 있다. 머독의 계열사인 에코스타도 위성 TV를 통해 플레이보이보다 더 많은 음란물 판매 수익을 올리고 있으며 AT&T도 핫 네트웍이란 자회사를 통해 하드코어 포르노를 공급하고 있다. AT&T 케이블 고객의 1/5이 편당 10달러씩 내고 이를 시청한다. 고급 호텔 투숙객의 절반이 성인영화를 주문하며 호텔들이 이로 벌어 들이는 돈만 연 1억9,000만달러에 달하고 있다.

지금 와 생각하면 미국인들이 르윈스키 스캔들이 터졌을 때 왜 클린턴에 관대했는지 짐작이 간다. ‘모든 국민은 자기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는 메스트르의 경구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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