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주의보다는 차라리 짜장면주의가 낫다" 퍽 오래 전 한국의 힘없는 인텔리들이 중얼대던 말이다. 정통성이 결여된 정권이 들어서서 외치느니 애국애족이고, 이에 화창하는 국수(國粹)주의 어용학자들만 판치게 되자 나온 자조의 말이다.
말이란 참으로 묘하다. 반어적으로 그 때의 상황을 전달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사랑이 없는 곳일수록 사랑이 외쳐진다.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온갖 것이 장식될 때 민주주의는 실종상태이기 일쑤다. 애국애족이 강조될 때는 가짜 애국자가 판치는 세상이기 쉽다. 이 역설의 말장난을 모진 세월을 살아온 한국인들은 누구보다도 잘 체득하고 있다.
내셔널리즘이란 말이 요즘 유행을 타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 축에 끼려면 세계화를 논해야 했다. 세계화, 세계주의(Globalism)는 시대의 화두였다. 이 ‘글로벌리즘’이란 말이 언제부터인지 슬며시 뒷전으로 밀리면서 내셔널리즘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느낌이다.
미국에서 내셔널리즘이 급 타이드를 탔던 때는 레이건 시대다. 라틴 아메리카를 휩쓸고 있는 좌익 게릴라를 강력 저지한다는 방침 하에 미국은 그레나다를 침공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급기야 소련은 "악의 제국"으로 선포되면서 미국의 내셔널리즘은 절정을 맞았던 것. 미국적 특장의 하나는 모든 것을 재빠르게 상업화하는 재주다. 내셔널리즘이 상품으로 가치가 크다는 사실을 새삼 발견, 내셔널리즘 세일이 유행을 만났다. 온통 근육투성이인 ‘램보’가 혼자 종횡무진, 악의 제국을 쳐부수는데 미국이 열광했다. 저능아 수준의 영화 ‘램보’가 뜬 것이다. 미국을 휩쓸고 있는 내셔널리즘을 세일의 포인트로 삼아 영화를 만들었고 그 세일 작전은 적중했다.
레이건 리바이벌이 요즘 한창이다. 역대 미대통령 중 25위, 그러니까 중하위권에 랭크됐던 레이건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다. 조지 워싱턴·에이브러햄 링컨· 프랭클린 루즈벨트 등 ‘그레이트 3’의 반열에는 못 미치지만 역대 대통령중 8위로 레이건의 랭킹은 급격히 상향조정된 것이다.
이와 함께 일종의 레이건 우상화 작업이 피치를 올리고 있다. 마운트 러시모어에 레이건의 얼굴을 새기자는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미합중국의 수도 워싱턴 DC 한 가운데에 레이건 기념탑을 세우자는 캠페인도 벌어지고 있다. 또 뭐가 있더라. 그렇지. 10달러짜리 지폐에 레이건의 초상을 그려 놓자는 움직임도 만만치 않다.
농담이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레이건을 숭배하는 보수 단체가 레이건의 이름을 미 전국 방방곡곡에 아로 새겨놓는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미전국의 3,067개 카운티에 레이건의 이름이 들어간 구조물이나 기념물을 최소한 하나 이상 건립한다는 게 이들의 목표다. 그 뿐이 아니다. 과거 공산주의 체제였던 국가마다 레이건의 냉전승리를 기념하는 모뉴먼트를 세운다는 야심 찬 계획도 가지고 있다. 이 운동은 새로운 내셔널리즘 확산과 함께 세를 넓혀가고 있다.
왜 느닷없는 레이건 리바이벌 붐일까. ‘박정희 향수의 되새김질이 경상도 표 획득으로 이어진다’는 한국형 정치 계산이 먹혀드는 미국이 아닌 것이 분명한 만큼 그 원려심사를 헤아리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집히는 게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내셔널리즘이 팽배할 때 득을 보는 세력은 따로 있다는 추리가 가능해서다. 이와 관련해 ‘군산복합체’니, ‘아메리카 넘버 1의 미지상주의’니 하는 단어들이 떠오른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미지상주의=애국’이고 이것에 최상의 가치를 두는 세력이 내셔널리즘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상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새로 대두되고 있는 내셔널리즘이 반이민 정서 확산으로 이어지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다. 센서스 결과 아시아계 등 소수계 인구는 괄목할 증가를 보였다. 반면 미경제는 나빠지고 있다. 거기다가 미-중간의 갈등은 계속 증폭되고 있다. 무언가 희생양을 요구하는 분위기다. 이 와중에 반이민 정서는 일부 지역에서 위기의식으로까지 변전되고 있는 것이다.
내셔널리즘이 팽배할 때 그 사회는 자기기만에 빠지기 쉽다. 내셔널리즘이 내포하고 있는 배타주의라는 부정적 얼굴 때문이다. 내셔널리즘의 배타적 얼굴은 해외정책에서는 일방주의로, 국내적으로는 이민그룹 등 미국사회의 마이너리티 박해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미국의 역사가 증거하고 있다. 날로 확산되고 있는 내셔널리즘. 어딘지 심상치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