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좌우 한쪽으로 치우친 배 가라앉아"

2001-04-2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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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대석

▶ 작가 이문열

한국에서 가장 유명세를 타는 작가를 꼽으라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중 하나가 이문열(53)이다. 지금까지 팔린 책수만 2,500만 권으로 한국 가정에 그의 책 한두권쯤 없는 집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뿐더러 이슈가 터질 때마다 논란의 소용돌이 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영어로 번역돼 출간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Our Twisted Hero) 사인회와 강연차 미국 순방중 LA에 들른 이문열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 봤다.


-세계 여행을 자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LA는 이번이 몇 번째입니까.
▲유럽은 여러 번 갔는데 LA는 이번이 14년 만에 처음입니다.


-이문열씨는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번역판이 많이 나온 작가로 알고 있습니다. 이 책 출간의 의미를 말씀해 주시죠.
▲유럽 등지에서는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등 13개국에서 제 작품을 번역해 출간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처음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이번이 25번째 번역 출판인 셈입니다.



-유럽에 비해 미국 진출이 늦은 편인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유럽에서는 다른 나라 작가를 발굴, 소개하는데 적극적인 반면 미국은 나라가 커서인 지 별로 아쉬울 게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웃음). 제 책을 7권이나 낸 프랑스는 물론이고 그리스에서도 한국으로 찾아와 번역 출판을 요청했습니다. 미국은 이쪽에서 몇 번 요청을 했는데도 좀처럼 쉽게 응하지 않았습니다.


-한국 작품이 미 주요 출판사에 의해 번역돼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알고 있습니다. 첫 작품으로 ‘일그러진 영웅’을 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제가 아니고 출판사가 작품을 골랐습니다. 대표작은 아니지만 상도 받고 영화로도 만들어져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방미 기간중 어디서 강연과 사인회를 했으며 반응은 어땠습니까.
▲하버드 컬럼비아 대학에서 강연했으며 6개 도시를 돌았습니다. 반응은 좋았지만 청중들 가운데 미국인보다 한인이 많아 조금 아쉬웠습니다.


-유럽쪽에서 요즘 한국 작가를 활발히 개발하는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입니까.
▲89년까지만 해도 거의 없었지만 이제는 한국 작가 번역본이 50권 정도 유럽 서점에 나와 있습니다. 유럽은 전통적으로 타국 작가를 소개하는 전통이 있는데 60~70년대 마르케스등 중남미 작가에서 80년대 쿤데라를 비롯한 동구작가를 거쳐 요즘은 동아시아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 한국작가들이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 프랑스 관계 이야기에 따르면 일본은 어필할 만한 작가가 별로 없고 중국은 문화혁명 이후 문학 수준이 수십년전으로 퇴보, 세련성이 떨어지는 반면 한국 문학은 상대적으로 신선하고 활력이 있다고 합니다.


-한국 문학이 세계 문단에서 주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까.
▲한국민은 식민통치부터 한국전쟁, 혁명과 내란등 세계 어느 나라 사람보다 고통을 받은 민족입니다. 이 때 겪은 강렬한 역사적 체험을 작품화한다면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중남미 작가들이 뜨기 시작한 것도 정치적 독재치하의 고뇌스러운 삶을 진지하게 그리면서부터였으니까요.


-작품속에 분단이나 이데올로기등 정치적 색채가 깔리는 경우가 많은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문학, 특히 소설은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우화에는 동물도 등장하지만 결국 의인화된 동물입니다. 정치라는 것은 사람이 살아나가는데도 어떤 분야보다 큰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한국과 같은 상황에서 문학을 하면서 정치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 걸핏하면 도마 위에 오르고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 같습니다. 우파 지식인의 표본으로 공격받는 일이 잦은 데 본인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역사도 이념도 세상일은 뭐든지 홑은 없고 쌍으로 돼 있습니다. 사상도 좌우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안되고 균형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봅니다. 20세기의 비극인 2차대전이 나치즘과 파시즘등 극우파의 득세로 일어났다면 소련 공산주의의 참상은 극좌의 권력 독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배가 오른 쪽으로도 왼쪽으로도 기울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이 지식인의 임무입니다. 스스로는 균형추 노릇을 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식인들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지식인들은 좌파적 성향이 강합니다. 진보와 평등이라는 영원한 유혹에 휩쓸리기 쉽기 때문이죠. 지식인들은 대체로 자기가 최고이며 정치인이나 돈 많은 사람이 아니라 지식인에 의해 주도되는 사회가 이상적인 사회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얼마 전 한국에서 안티조선 운동이 일어났을 때 그 주도 세력으로부터 공격당한 일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일고 있는 이런 비판 운동은 어떻게 봅니까.
▲한마디로 웃기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는 것인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보지 않으면 되는 것이지 불매운동을 벌인다느니 거기에다 글을 쓰면 안된다느니 하는 발상은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조선일보가 친일한 것까지 들고 나오는 데 당시 일제 시대에 살면서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이 비판하는 것은 몰라도 자기는 당시 상황을 경험해 보지도 않았으면서 이제와 이를 거론한다는 것은 비논리적이라고 봅니다.


-현재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뭐라고 봅니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 걸쳐 일어나고 있는 권위부정 풍조입니다. 한국 사회 비판으로 요즘 뜨고 있는 강준만 교수의 비판 리스트를 살펴보면 모두 지금까지 한국에서 1등을 해 온 기관이거나 인물입니다. 서울대가 그렇고 조선일보가 그렇습니다. 건설적인 비판은 좋지만 대안도 없이 모든 권위를 부정하면 하향 평준화 이외에는 나올 것이 없습니다. 얼마전 선거에서 유세에 나온 후보의 마이크를 뺏는 일이 벌어졌는데 그런 홍위병 식 폭력으로는 정치가 바로 잡히지 않습니다. 지난 번 선거에서 영남권이 야당에 몰 표를 준 것도 대다수 국민들이 그런 꼴을 보기 싫어한다는 증거입니다.


-최근에는 또 여권운동가들로부터 여성을 모독했다는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현대적 여권운동이나 페미니즘에 반대합니까.
▲제 독자의 절반이 여성인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단지 여권운동이 아마존 전사처럼 남성 위에 군림하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을 말했을 뿐인데 그것이 마치 여성을 비하하는 것처럼 왜곡됐습니다. 모든 운동은 적이 있어야 발전합니다. 한국의 여권 운동도 아직 초기 단계여서 그렇겠지만 기회만 있으면 꼬투리를 잡아 논란을 일으키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미국에도 200만에 달하는 한인들이 살고 있고 문학활동도 최근 활발한 편입니다. 이들에게 들려줄 조언이 있다면.
▲미주 한인들 가운데도 한국문단에 등단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작품 내용을 보면 불행하게도 한국에서는 이미 구식이 되어버린 낡은 형식과 과거를 회상하는 식의 회고조가 많습니다. 미국은 모든 분야에서 선진국이고 미국을 좀더 치열하게 공부하고 이를 작품으로 표출할 때 한국에서도 인정받고 문학적으로도 기여할 수 있다고 봅니다. 옛날에 집착하지 말고 미국을 배우는 것이 미주 한인들이 나아갈 바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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