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생 운전, 자동차 운전

2001-04-2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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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봉진 (수필가)

얼마 전 부에나팍의 한 거리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졌었다. 야구 모자를 돌려쓰고 락그룹 T셔츠에다 반바지 차림의 청년이 건널목이 아닌 거리에서 무단횡단을 하고 있었다. 그 청년을 피해서 그냥 내달리는 자동차도 있었고 청년이 건너기를 기다렸던 자동차도 있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모터사이클 경관이 나타나 모든 자동차를 세우고 티켓을 주었다.

따지고 보면 잘못을 먼저 저지른 것은 그 청년이지만 건널목이 아닐지라도 교통법규엔 보행자 우선 원칙이란 것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위반한 사람에게는 교통위반 티켓이 주어졌고 준수한 사람에게는 “축하합니다”라는 인사말과 20달러 상품구입권이 주어졌던 것이란다.

20년도 훨씬 넘게 캘리포니아에서 자동차 운전을 해오면서 지금은 어엿한 모범운전자로 DMV에 가지 않더라도 갱신 때 집으로 새 운전면허증이 우송돼 오지만 예전에 여러 모양의 교통위반 티켓을 받아본 내겐 많은 것을 생각나게 했다.


이민 초기. 향수병을 견뎌내기 위해 매 주말마다 나는 어지간히 낚시를 다녔었다. 편안히 집에서 머무는 사람에겐 티켓 받을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았겠지만 먼길을 자주 다니다보니 단시일에 삼성 장군으로 진급이 됐었다. 어느 날은 하루 동안 새벽과 오후에 별을 단 적도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고소가 절로 나오지만 그때는 해가 뜰 무렵의 물때를 맞추기 위해 너무 서둘렀던 것 같다. 그 날 새벽 낚시를 갈 땐 스톱 사인에서 정차는 했지만 불충분했다고 경관은 말했다. 오후엔 프리웨이 제일 안쪽 레인에 들어서 돌아오던 중 앞서 몇 대의 자동차를 붙잡고 있던 경관에게 정지신호를 받았었다.

나는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주어들은 이야기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한인타운에서 이름이 잘 알려진 할아버지는 교통경관의 말끝마다 “댕큐다”를 연발해서 위기를 모면했다고 했고. 영어가 짧은 한 사람은 “원 타임 씨”를 연발했지만 한국식 양어로 “한번 봐 주십시오”란 말뜻을 알 길 없는 경관은 귀찮아서 그냥 갔다고 하지 않던가.

다가온 경관에게 나는 최상의 예우를 갖춰 물었더니 규정보다 5마일 과속에다 자동차에 보트를 매달고 주행선 운행을 했다는 거였다. 첫번째 과실은 경관의 재량권에 속하는 사안이고 뒤의 것은 정말 알지 못했었다. 밑져야 본전이란 심산으로 나는 아침에 받았던 티켓을 내보이며 “원 타임 씨” 비슷한 사정조의 말을 했더니 그는 2개의 벌점중 1개는 봐준다고 했었다.

우리네의 삶은 서둘러 앞서 갈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뒤쳐져 갈 일도 아니며 마치 흐르는 물처럼 주어진 세월의 속도를 즐기면서 살아가면 되는 것인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일방 통행뿐인 인생 길에서 타인에게 위해를 끼치면서까지 신호를 기다리지 않고 뛰쳐나가기도 하고 사인을 미리 주지 않고 함부로 차선을 바꾸며 때로는 U턴도 불사하지 않는가. 오죽했으며 부에나팍 경관은 그저 일상적인 원칙을 지킨 데 불과한 운전자에게 “축하합니다”란 인사말을 했겠는가? 우리네 삶도 자동차 운전처럼 남보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운전하는 것이 현명한 태도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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