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비가 무서워 도저히 치료를 받을 수가 없었어요. 우리 같은 사람들도 정부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불법체류자란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 말도 못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이런 약점을 빌미로 봉변을 당할 수도 있거든요"
체류신분에 상관없이 정부가 제공하는 각종 의료 지원프로그램 실태를 취재하기 위해 만난 김모씨(여·45)는 얼마전 한인타운에서 당한 교통사고로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면서도 주위의 눈과 입이 신경이 쓰이는 듯 아파트 부근에 정차해 놓은 기자의 차로 갈 것을 요청했다. 지팡이를 집고 간신히 차에 오른 김씨는 통증이 무척 심한 둣 얼굴을 찡그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계속되는 김씨의 말. "이국 땅에서 한 동네에 살면 서로 위하고 도아줄 것 같지만 서로의 감정이 좋지 않아 언쟁이 벌어지면 제일 먼저 튀어 나오는 말이 ‘불법체류자’, 그리고 더 심하면 ‘고발하겠다’는 식의 협박도 이어집니다. 우리같은 사람들에겐 가장 가슴아픈 얘기들이지요"
취재를 위해 만난 다른 한인 불법체류자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박모씨(50)는 "일자리를 얻기 위해 찾아가면 합법체류자보다 말을 많이 해야 한다"면서 "우선 영주권이 없다는 것을 고백해야 하고 더불어 임금은 수표가 아닌 현금으로 달라는 것 등이 결국 신분 때문에 필요한 것이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이밖에 한 60대 남성은 아예 이같은 정부 지원프로그램이 결국 불법체류자를 색출(?)하려는 숨은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인터뷰에 응하는 대신 기사에서 이름과 거주지를 빼줄 것을 요구했고 사진 촬영은 아예 거부했다. 한인사회가 큰 것 같지만 이름 석자만 봐도 어디에 사는 누군지를 금방 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한국 외교통상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99년 현재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 불법체류자가 19만8,862명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들중 그나마 자격이 갖춰진 일부는 곧 마감될 이민법 245(i) 조항의 혜택을 받기 위해 변호사 사무실에 몰리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기회조차 누릴 수 없는 많은 한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한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물론 한인 불법체류자 모두가 이같은 고통을 겪고 있다고 단언할 수도 없다. 하지만 불법체류자이기에 앞서 동족인 이들이 겪고 있는 설움을 조금이나마 치유할 수 있도록 우리 한인사회가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