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코리안 매운맛 볼래?"

2001-04-2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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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은 꼭 신문에 내서 한인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피해자를 방지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평소 일 처리가 빈틈없기로 소문난 1.5세 은행원 케이가 흥분을 해서 전화를 해왔다.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아파트 렌트를 내느니 조그마한 콘도라도 내 집을 장만하려다가 비양심적인 미국인 부동산 에이전트로 인해 금전적, 시간적 손해를 봤다는 주장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노스 글렌데일 지역 부동산 시세를 훤히 꿰뚫고 있는 케이는 어느 날 시세보다 최소한 2만달러는 싼 가격에 나온 매물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엇인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허점이 있지나 않은지 자신의 에이전트인 한인 부동산업자에게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리스팅 에이전트인 미국 부동산업자 측에서는 아무런 문제점이 없고 빨리 팔기 위해 싼값에 내놓은 것이라고 답했다. 망설일 이유가 없어진 케이는 즉시 오퍼를 냈고 바이어가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계약을 맺고 에스크로에 들어갔다.


그러나 융자신청 과정에서 문제의 부동산이 일반 콘도미니엄이 아니고 ‘코압’(co-op)인 사실이 드러났다. 콘도는 개별 소유인데 비해 코압은 건물 전체 입주자가 연대 책임을 지는 일종의 공동주택이라는 점이 다르다. 게다가 코압에 대해서는 일반 은행에서 융자를 해주지 않으며 모기지 전문회사를 통해서만 대출이 가능하고 금리 수준도 일반주택 매매에 비해 1%포인트 정도 높다.

이같이 조건이 까다로운 코압을 값이 싸다고 해서 살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케이는 구입을 포기하겠다고 통보하고 계약금 4,000달러 및 감정료등 그동안 자신이 지불했던 비용 500달러를 배상해줄 것을 요구했다. 배상의 책임은 문제의 부동산이 일반 콘도가 아니고 코압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은 미국인 리스팅 에이전트 측에 있는 것이 분명한데 리스팅 에이전트는 계약금은 돌려줄 수 있지만 500달러 배상은 해줄 수 없다고 맞섰다.

화가 난 케이는 소액재판을 청구해 그동안 자신이 빼앗겼던 시간에 대한 배상까지 받을 생각을 했는데 케이의 에이전트인 한인 부동산업자가 "평소 거래가 많은 리스팅 에이전트측과 비즈니스 관계를 원만히 유지하기 위해" 500달러를 대신 변상하겠다고 나섰다.

케이는 원하던 배상은 받게 됐지만 마이너리티 바이어라고 얕잡아보고 배상을 거부하는 미국인 리스팅 에이전트가 괘씸해 부동산 라이선스를 관장하는 주부동산국에 신고를 하기로 했다.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비양심적인 미국 부동산업자에게 코리안의 매운 맛을 보여주어야겠다는 것이다.

"내가 1.5세로 영어에 불편이 없었기 때문에 그 정도로 해결이 됐지 만약 영어가 불편했다면 계약금도 돌려 받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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