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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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런왕과 설거지투수

2001-04-2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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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러시엄

▶ 박덕만 <편집의원>

배리 본즈라면 우리 한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왼손잡이 강타자다. 우리 박찬호선수에게 특히 강해 지난 18일 박찬호에게 시즌 첫 패배를 안겨준 장외홈런을 포함해 지금까지 5개쯤 홈런을 기록하고 있다. 본즈는 전날인 17일 경기에서도 8회말 다저스 구원투수 테리 애덤스로부터 프로통산 500호 홈런을 뽑아낸바 있다.

강타자라고해도 500홈런기록을 수립하기란 쉬운일이 아니다. 한시즌에 25개 홈런을 20년동안 쳐내야 가능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몇 년동안 반짝하다가도 부상등으로 시들어 버리곤하는 요즈음 선수들로서는 이루기 어려운 과업이다. 그래서 메이저리그 100여년 역사상 500홈런을 돌파한 선수는 본즈를 포함해 17명 뿐이다. 17명 중에는 행크 아론, 베이브 루스, 윌리 메이스, 프랭크 로빈슨, 테드 윌리엄스등 전설적인 존재들이 포함돼 있고 현역으로는 마크 맥과이어(555개)와 본즈가 유일하다.

’500 홈런클럽’의 회원이된 본즈가 경기를 중단한채 자신의 아버지 바비 본즈, 자이언츠 출신 ‘500홈런 클럽’ 회원 윌리 메이스, 윌리 맥코비등과 얼싸안고 요란하게 기념식을 갖던 그날 왕년에 팀메이트이자 라이벌이었던 바비 보니야는 때아닌 ‘설거지 투수’ 노릇을 하고 있었다. 영어로는 Bonilla라고 표기하기 때문에 한국의 스포츠캐스터들이 보닐라라고 이름을 잘못 읽곤하는 그는 80년대후반~90년대초반 본즈, 앤디 밴슬라익등과 함께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막강 클린업 트리오를 이뤘던 강타자다.


본즈와 보니야는 닮은 점이 많다. 나이는 보니야가 한 살 많지만 메이저에 데뷔한 해는 86년으로 같다. 둘은 91년까지 파이어리츠에서 함께 뛰면서 파워경쟁을 벌였다. 피크는 90년 시즌으로 33홈런에 114타점을 기록한 본즈가 32홈런에 120타점의 보니야와 치열한 경합끝에 내셔널리그 MVP영예를 차지했고 보니야는 2위에 올랐다. 그후에도 둘은 MVP트로피를 놓고 몇차례 더 경합을 벌였으나 본즈는 92년과 자이언츠로 옮긴 93년 두차례 더 MVP 영예를 차지했고 보니야는 번번히 2,3위에 그쳤다. 그러나 보니야는 비록 본즈에게 밀리기는 했어도 올스타에 6차례 뽑혔고, 실버슬러거 트로피를 3차례 받았으며 한게임 좌우 양타석 홈런 내셔널리그기록(6회)도 보유하고 있는 강타자다.

90년대 후반 다소 시들해지던 본즈가 다시 조명을 받기 시작한데는 운도 따랐다. 지난해 오픈한 자이언츠 새구장 팩벨팍이 왼손타자인 본즈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구장은 우익수쪽 담장까지의 거리가 짧아 420피트 정도만 날리면 담장을 넘어 왕년의 강타자 윌리 맥코비의 이름을 따 ‘맥코비 코브’로 명명된 바다로 빠지게 돼있다. 우측으로 이같은 대형홈런을 날리는 것은 본즈같은 왼손타자가 아니면 어렵다. 맥코비 코브는 본즈를 위해 존재하는 셈이 됐고 관중들은 잊혀져가던 "배리! 배리!"를 다시 외쳐대기 시작했다. 코브에는 보트를 타고 홈런볼을 줍기 위해 대기하는 사람들이 여럿이다. 자이언츠의 옛구장 캔들스틱팍의 관리인이 주운 본즈의 500호 홈런볼은 50만달러를 홋가한다고 한다.

불행히도 본즈와 같은 행운을 얻지 못한 보니야는 92년 메츠, 95년 오리올스, 97년 말린스등 이팀 저팀을 전전하다가 98년 피아자-셰필드 트레이드 곁다리로 LA에 왔을때는 관중들 야유의 대상이 돼 있었다. 지난해 브레이브스를 거쳐 금년에는 카디널스에서 뛰고 있는데 지난 17일 9회초 15대4로 뒤진 상황에서 메이저리그 투수데뷔를 했다. 5명의 투수가 KO당한 카디널스는 경기를 포기한 상태였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한이닝을 막아야만 했고 벤치에 할 일 없이 앉아있던 보니야가 설거지를 자청하고 나선 것이다. 옛 라이벌 본즈가 폭죽을 터뜨리며 ‘500홈런 클럽’가입을 축하받고 있던 그순간 보니야는 홈런 1개를 포함, 안타 3개에 포볼 하나로 2점을 내주며 게임을 포기한 팀을 위해 1이닝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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