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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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코이아 곰 이야기

2001-04-2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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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수 <가주 한인정신건강후원회장>

우리 부부는 스트레스를 느끼면 장단기 여행으로 해소하고 있다. 이번에는 10일 예정으로 세코이아로 해서 샌프란시스코로 다녀올 계획을 세웠다. 주위의 친지들은 한사람씩 세상을 떠나니 세월이 갈수록 외로움이 피부로 엄습해 오고 있다. 그전에는 별로 느껴보지 못했는데 이제는 예전의 기력과 담력은 간 곳이 없어졌다. 떠나기에 앞서 그동안 보관하고 있던 재산목록을 자세히 적어서 식탁 위에 올려놓고 출발을 했다.

떠나기 앞서 인터넷으로 캠핑장 열린 것을 확인하고 떠났기 때문에 숙소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9년 전에 갔다온 길이었으나 그래도 낯선 길 같았다. 목적지보다도 가는 도중이 더 상쾌하였다. 때로는 커피샵에서 드링크도 한잔하면서 그동안 살아오는 동안이 주마등 같이 흘렀다. ‘당신하고 처음에 어떻게 만났지’ 하면서 동심으로 돌아갔다. 결혼한지도 어느 새 44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당신 고생 많이 했지’ 하면서 흰머리와 얼굴의 주름살이 역경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인생은 태어나서 강건하면 70~80세라고 하였다.

우리는 다시 길을 확인하기 위해서 어느 백인에게 길을 물었더니 종이에 자세히 알려주었다. 대부분 한국사람 같으면 고개를 좌우로 하면서 방향을 가리켜 주거나 조금 친절하면 손으로 동서남북을 가리킬 것이다. 한민족은 언제나 미국사람들 수준으로 친절할 수 있을까? 팍 입구에 도착, 안내자에게 캠핑장 개장 여부를 다시 확인했다. 열려 있으나 춥다고 알려주었다. 그러나 막상 도착하니까 닫혀 있었으며 눈이 쌓여서 텐트도 칠 수 없는 처지였다.


밤길이라 꼼짝 못하고 팍에서 밤을 보내기로 하고 화장실 스위치를 키려했으나 작동이 안되었다. 물을 끓이지 못하고 돌아왔다. 주위는 온통 흰눈으로 덮여 있어서 백색으로 밤이지만 환하였다. 그래도 산 속이기 때문에 주위를 살피면서 차안으로 들어왔다. 한 오분이 되였을까 차 옆으로 큰 곰이 나타났다. 숨을 죽이고 키를 꽂은 후 아내에게 곰을 확인시켰다. 그리고 시동을 걸 준비를 하면서 앞을 보니까 차 앞으로 걸어가서 차안을 확인하는 듯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긴장된 분위기속에서 가드가 나타났다. 곰을 보았느냐고 물었다. 경과를 이야기하니까 피해는 없었느냐고 물으면서 주위를 플래시로 비쳤으나 이미 사라진 후였다. 참 운명은 순간적으로 오며 예측을 못하는 것 아닌가. 만약 스위치가 작동됐었다면 왔다 갔다 하는 동안에 곰을 만났을 것이 아닌가. 생각할수록 당시 상황이 아슬아슬했으며 만약에 공격을 받고 희생을 당했다면 유서를 써놓고 떠난 것이 잘 한 일이 될 뻔했다. 하느님이 일을 더 하라고 생명을 연장해준 것을 감사 드리며 우리는 곰을 화제로 삼아 오클랜드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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