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카사블랑카의 추억

2001-04-2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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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희 (고려서점)

밤이 깊어 갈 무렵, 창문을 열고 내다보니, 알을 깨고 나오는 듯 아프게 돋는 별들과 포근한 밤 안개에 흐릿하게 지워진 도시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렇게 한동안 밀려오는 안개에 넋을 빼앗기고 있자니, 문득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주연을 했던 영화 카사블랑카의 마지막 장면, 안개가 자욱 깔린 공항에서의 이별 장면이 떠올랐다.

영화 카사블랑카는 루즈벨트 대통령이 미국 청년들에게 2차 세계대전의 참전을 부추기기 위해 만든 영화였지만 오히려 멜로드라마의 고전중의 하나가 되었는데, 나치 침공의 잔인한 소용돌이 속에서 기약 없이 헤어졌던 첫 사랑의 여인, 이미 남의 아내가 된 첫 사랑의 여인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사랑한 여자와 그녀의 남편을 독일의 감시망을 뚫고 탈출시키는 영화로, 전쟁으로 폐허가 된 아프리카 모로코의 카사블랑카에서 펼쳐져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준 영화였다.

이 영화의 주제곡인 "As Time Goes By" 역시 잊혀지지 않는 사랑 노래의 고전으로 남아있는데, 영화 속에서 Rick’s Cafe를 운영하고 있는 험프리 보가트가 잉그리드 버그만과 사랑을 나눌 때 wmf겨 신청하던 곡으로 두 사람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을 잘 드러내고 있다.

"세월은 아무리 흘러도 날카롭고 화려했던 키스의 순간들과 사랑의 번뇌로 고통받고 한숨쉬던 순간들의 추억은 덩어리, 덩어리져 우리들의 삶의 핏속에 남아 흐르리. 세월은 흘러도 연인들은 남으리. Kiss is kiss, Sigh is sigh,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일 뿐..." 영화 "Sleepless in Seattle"에서는 지미 듀란테가 부른 이 노래 "As time goes by"처럼 포도주와 잘 어울리는 노래도 없을 것 같다. 살다보면, 누군가를 사랑하고 미워한 시간조차 없는 척박한 우리 마음속으로도 이제는 한물간 낭만이 고개를 쏘옥 내밀 때가 있다. 문득 잊혀진 애인을 떠올리듯 카사블랑카의 험프리 보가트를 생각해 본 이 밤, 창 밖에는 어제도 본 듯한 별 하나 아프게 돋아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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