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민족 차별과 동족 차별

2001-04-2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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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태 (시인)

독일의 히틀러는 민족차별주의자로서 수업이 많은 유대인을 학살했다. 민족 차별이 토해낸 인류의 공포였다. 우리가 미국도 백인이다 흑인이다 황색인이다 하는 인종차별에서 이제는 민족차별 쪽으로 점점 이동해 가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인종차별은 시간적이나 공간적 또는 부분적으로 인정과 관용이 통하지만 민족차별에는 한 묶음의 거대한 가름으로써 거기에는 전혀 관용과 인정과 용납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것을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집트 노예생활에서 증명했고 히틀러의 유대인 정책에서 보아왔다. 또한 일본의 식민지 정책에서 우리가 경험한 민족차별이 있다. 법에는 차별이란 그 자체를 금하고 있으나 중국민족은 차이나타운을 중심으로, 배달민족은 플러싱을 중심으로 각 민족마다 민족적인 지역 테두리를 현실로 나타내며 모여서 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미래의 민족차별 시대를 예방하여 자활을 위한 자연적인 발생인지도 모른다.


평등이란 말은 2000년 전 중국의 묵자가 처음으로 들고 나온 상등이란 철학에 기원하지만 인류역사에 과연 진정한 평등이 고루 고루 시행되어 왔는지 평등이란 그 말에 의심이 간다.

그 나마 평등이란 말과 시행 노력이 무너지면 인류에게는 차별만 난무하게 될 것이 뻔하고 그 차별은 생존에 공포를 조준하게 되는 결과만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한국 국민의 배달민족으로서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이 땅으로 온 이민자다. 이민의 역사도 꽤 됐으니 어려서 부모의 손에 매달려 영문도 모르고 이민 길에 따라 나섰던 그 때의 어린아이도 이제는 대학을 나와 버젓이 사회에 진출하여 제 몫을 다하고 있으며 여기에서 태어난 그 때의 아이들도 한국사람의 얼굴로 다들 그렇게 커서 청년이 되었다. 모두 한민족의 자산이고 그들로부터 한민족의 미래를 쉽고 건강하게 읽어낼 수가 있다.

한국에서는 학생들이 뭐니뭐니 해도 미국 유학을 제일로 손꼽는다. 미국의 명문대학을 꿈꾸면서 유학 채비를 부지런히 하는 학생들도 많고 유학 채비를 끝내고 유학을 오는 학생도 많다. 유학이던 뭐든 간에 미국으로 오는 학생들은 이곳 이민자나 이민자의 자녀들로부터 차별 대신 동족으로서의 서슴없는 따뜻한 도움을 받으며 그 도움으로 힘든 유학생활과 타향살이의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데 큰 보탬이 되는데 이민자의 자녀가 한국을 방문하면 따돌림을 당한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우물에서 보이는 하늘이 전부인줄 안다. 세계화를 부르짖으며 영어바람이 심하게 부는 한국에서 초등학교 아이들도 영어를 배우라고 채근이 심한데 명문대학을 나오고 세계화가 다 된 동족의 젊은이가 한국엘 가면 따돌림을 당한다.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못한다느니 한국말 발음이 이상하다느니 하면서 눈살을 찌푸리는 따돌림이 심하다. 그래서 아비와 어미가 살던 그리운 고향땅, 아니 고국을 보고 오라고 소원처럼 등 떠밀어 보내면 한국에 갔다 온 아이들은 한국이 싫다하며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한다.

동족 차별에서 오는 서글픔이다. 민족 정서의 자리 매김이 흔들리고 있는 현상이다. 한국의 아이들이 내뱉는 말솜씨는 거칠어지고 학생들의 행동에는 예의가 사라지고 청년들의 시선에는 초점이 사라져 한국의 미래를 건강하게 읽어 낼 자료가 없다. 까마귀 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참새가 지껄이는 곳에 봉황새야 가지 마라 하고 싶어도 동족이고 조국이니 그럴 수도 없고, 이민자의 고문 가운데 새로운 고민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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