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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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모순’ 의 시대

2001-04-2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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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 에세이

▶ 조윤성<국제 부장, 부국장>

가도가도 옥수수밭만 끝없이 펼쳐져 있는 아이오와주 남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마을 ‘베이딕 시티’(vedic city)가 다음달 아이오와주의 950번째 시가 된다. 시라고는 하지만 주민이라야 125명에 불과한 작은 마을이다.

그러나 아이오와의 마을이라고 촌 동네를 연상하면 곤란하다. 광활한 옥수수밭 위에 10년 전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베이딕 시티는 인터넷 무선접속 시스템등 첨단설비까지 두루 갖춘, 시골마을 같지 않은 신흥 커뮤니티이다.

그런데 이 마을에 들어서면 깨끗하다는 점 외에 무언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 느낌은 이 곳의 모든 건물들이 한쪽 방향으로 지어져 있다는 데서 온다. 예외 없이 떠오르는 해를 바라볼 수 있도록 지어진 동향 건물들이다.

베이딕 시티는 초월명상 붐을 일으킨 마하리쉬의 추종자들이 건설한 ‘명상의 마을’이다. 베이딕이라는 이름도 ‘지식’을 뜻하는 인도 산스크리트어 ‘베다(veda)’에서 따온 것이다. 10년 내에 상주 인구 1.000명의 명상 중심지로 키우고 마을 한 가운데는 1만명의 명상자를 수용할 수 있는 2개의 거대한 황금색 돔을 건설한다는 게 주민들의 매스터 플랜이다.


이들은 미국 전체 인구수의 1%의 제곱근에 해당되는 숫자인 1,600여명이 동시에 초월 명상을 하면 미국을 위한 보이지 않는 힘이 생겨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인류 전체로 계산하면 약 7,750명의 명상이 필요한데 넉넉잡고 1만명을 목표로 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의 신빙성은 차치하고 일단 요즘 미국사회의 분위기로 봐서 이들의 1만명 목표는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이번주 ‘타임’은 미국사회에 불고 있는 ‘요가 열풍’을 커버스토리로 다루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현재 요가를 수행하는 미국인들이 1,500만명에 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5년 전보다 무려 2배나 늘어난 숫자라니 정말 ‘열풍’이라 할 만하다.

대부분은 헬스클럽 등에서 실시하는 요가 프로그램에 등록한 사람들이지만 명상과 종교적 경지를 추구하는 수행자들도 적지 않다. 할리웃의 스타들도 요가에 빠져들고 있다. ‘세속성의 화신’이라 할 만한 마돈나가 요가를 통해 욕망과 초월의 깨달음을 얻었다며 산스크리트어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요가와 ‘젠’(ZEN·禪) 같은 아시아적 정신뿐 아니라 기독교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레코드 가게 한 켠에 비켜나 있던 가스펠CD들이 당당히 진열대 가운데로 나오고 있다. 찾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생긴 위상의 변화이다.

바야흐로 미국은 지금 ‘영성의 시대’라 할 만하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포겔 교수의 지적처럼 미국이 ‘제4의 위대한 각성’ 말기에 접어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각성시대에 돌입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영성의 열병이 미국을 휩쓸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주체할 수 없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는 베이비부머 세대들의 정신적 반동일까, 아니면 새뮤얼 헌팅턴 교수의 말처럼 이념이 지나간 공백을 종교가 메우고 있는 것일까.

이처럼 분명 사람들의 종교성은 눈을 뜨고 있는데 제도화된 종교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교회 출석률이 갈수록 낮아지는 것이 대표적인 현상이다. 또 절반이 훨씬 넘는 미국인들은 종교의 사회적 영향력이 갈수록 줄고 있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제도화된 종교에 대한 염증, 그리고 법이 규정하고 있는 정교분리 원칙, 지나치게 개인화된 영성 추구 등이 원인으로 보인다. 건강 등 이기적인 목적에서 이뤄지는 ‘범부선’(凡夫禪)이나마 없는 것보다는 나을지 모르지만 영성 추구가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나 사회성을 상실할 때 그것은 자칫 자폐증세를 보일 수 있다. 미국사회의 커다란 과제의 하나는 바로 이같은 종교성과 종교의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은 갈수록 종교적이 되지만 종교의 영향력은 오히려 미미해지는 ‘모순의 시대’에 지금 우리는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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