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과외 문화

2001-04-1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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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위 마다 빨간 고추들이 널려 있다. 이로 보아 조선인 마을인 줄 알겠다"

한 외국인이 반세기도 훨씬 전 북만주의 외진 지역을 여행하다가 쓴 구절이다. 이 외국인은 이미 당시의 조선 땅을 여행한 경험이 있어 초가을 빨간 고추들을 따다가 말리는 한국적 전통에 익숙해 조선인 마을을 대번에 알게 된 것이다.

외국인도 금방 알 수 있는 요즘 시대의 한국적 전통은 어떤 것이 있을까. 골목골목 마다 들어선 교회. 맞는 것 같다. 분명 새로운 한국적 전통이 되고 있다.


또 있다. 과외 문화다. ‘과외를 안하면 축에 빠지는 게 아닐까’ 일종의 신종 강박증세까지 번지면서 과외는 한국적 전통으로 굳어지고 있다.

"애들이 대학에 들어가야 셈이 펼 것같다. 내가 받아오는 보너스는 죄다 두 아이 과외비로 나가니 정신이 없다" 한국에 살고 있는 한 40대 후반 가장의 푸념이다.

이 분의 설명에 따르면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는 편 이어서 그만하면 과외비가 적게 든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한 아이 과외비가 대학 학비보다 훨씬 많이 든다고 했다. 말하자면 대학보다 중·고등학교가 돈이 훨씬 더드는 게 한국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최근 한국정부의 발표로도 입증되고 있다. 지난해 한국에서 과외로 쓰여진 돈은 ‘정부의 공식추계상’ 7조원이 넘어섰고 강남등 신도시 부유층 지역의 경우 학생 1인당 과외비는 연간 286만원으로 집계됐다. 이 발표는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정부당국의 공식추계’다. ‘비공식’까지 가산 할 때 그 액수는 이를 훨씬 넘는다는 것.

"세 아이 과외비다, 베이비 싯터비용이다, 모두 합치면 2,000달러 가까이 든다. 집 페이먼트 내고 애들 뒷치락거리 하다보면 남는 게 하나도 없다" LA의 한 40대 가장의 이야기다.

이 분의 생활을 보면 미국에서의 한인들 생활도 ‘과외 문화’라는 신종 한국적 전통문화에 아주 충실하다는 인상을 준다.

뭐 그렇다고 과외를 100% 나쁘게 보자는 건 아니다. 한국 아이들의 높은 UC계 대학 입학률 등도 따지고 보면 억척같은 치맛바람, 즉 과외 덕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건전’ 수준을 넘어서는 데 있는 것 같다. ‘아무개 학부모회가 아무개 SAT학원을 밀고 있다’ ‘SAT 고득점 학생 모시기 경쟁이 학원가에서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학원 선전을 위해서다’ 요즘 학원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이다.

단편적인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LA의 과외 바람은 이미 정상수준을 넘어섰고 어딘가 병이 들었다는 신호로 들린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탈이 나는 법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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