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보이지 않는 소수민족

2001-04-1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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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 포먼 <샌프란시스코주립대>

낯선 나라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느낌이 어떠합니까?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대우를 받고,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거절당할 때 아픔은 어떠합니까? 당신의 모국어를 하는 사람은 오로지 당신 식구뿐이고, 당신 같이 생긴 사람을 신문이나 TV에서 볼 수 없고, 당신의 자녀가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전문인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없기 때문에 식당이나 세탁소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이웃으로부터 말과 생활습관이 다르다고 멸시 당하고, 동네 아이들은 당신의 아이들을 손가락질하면서 더럽다고 조롱합니다.

소수민족을 위해 싸울 준비가 되었습니까? 아마 독자들은 위의 이야기가 한인들의 이야기라고 짐작하실 것입니다. 한국에 사는 중국사람들 이야기랍니다. 아마 일본에서 사는 한인들의 이야기도 비슷할 것입니다.

한국에 살 때 적어도 일주일에 두세 번 이상 나는 중국식당에 가서 짜장면을 먹었다. 김치와 된장국에 질린 나를 기쁘게 하여 주었던 중국음식점은 한국의 기억 중에 잊지 못할 한 부분이다. 어느 도시에나 있었던 중국집을 드나들면서 나는 수백 명도 넘는 중국 사람들의 얼굴을 보았으리라. 그러면서도 중국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한국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


하루는 친구가 나의 셔츠 소매에 때가 끼어 꼬질한 것을 보고 웃으며 "중국사람 같다"고 놀리면서 옷을 빨아 입으라고 하였다. 또 한번은 마늘이 들어간 음식을 먹은 후였다. 여자친구가 "중국사람 같다" 면서 코를 쥐었다. 한국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한국사람들이 중국사람을 깔보고 있다는 것을 차츰 눈치로 알아챘다.

한국사람들이 더럽고 냄새난다고 말하는 중국사람을 직접 만나게 된 것은 한국에서 2년을 살고 미국으로 돌아올 즈음 비행기 표값을 마련하기 위해 영어회화 학원에서 강사로 있을 때이다. 고급 회화반에 등록한 다섯명의 남학생들은 다른 한국사람과 조금도 다른 점이 없었다.

한번은 수업 시간에 학생 한명을 지적하면서 "Korean" 하고 예를 들었다. 몇 번씩 "You are a Korean"하며 되풀이하자, 한 학생이 잠시 주저하더니 "우리들이 중국사람인 것을 몰랐습니까?" 하고 물었다. 나는 놀라며 "몰랐다" 라고 말했다. 내가 그들을 한국사람과 구별하지 못한 것을 놀라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재미있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감정이 상한 것 같기도 하였다. 그 순간 "아하, 이들이 중국사람이었구나" 하고 깨달았다. 그들이 더럽고 냄새가 나서 아니라, 며칠전 한 학생이 영어 에세이 숙제를 장개석에 관해서 쓴 글이며, 장개석 사진이 붙어 있는 노트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중국학생들에게 한국생활이 어떠냐고 물었다. 별로 나쁘지는 않다고 하면서, 자기들에게 투표권이 없으며, 한국 공립학교에 다닐 수도 없고, 공무원이 될 수도 없고, 대기업 사원으로도 들어가기가 힘들다고 말하였다. 대학에서 교수가 될 수 있는 기회는 중국어를 가르치는 교수뿐이라고 하면서 그중 한 학생은 수학에 천재이지만 한국대학에서 수학교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고 하였다.

또 놀라운 점은 그들이 한국에서 태어났으면서도 한국이 자기의 조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나를 더욱 더 놀라게 한 사실은 부모의 고향인 중국 본토를 조국이라고 부르지 않고, 대만을 자신들의 조국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화교들이 중국 공산국가를 조국이라고 부르면서 한국에서 살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 모른다고 짐작하였을 뿐이다. 모택동 사진을 노트북 커버에 붙이고 다닐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소수민족을 볼 수 있는 눈을 내게 선물로 준 다섯 명의 중국학생들이 가끔 생각난다. 지금은 한국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궁금한 마음에서 한국사람을 만나면 가끔 물어본다. "중국사람들이 중국음식점을 경영한다는 것 이외에 한국에서 사는 중국사람들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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