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라티노 파워

2001-04-1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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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의 역사는 오래다. 기원전 3300년 인물로 추정되는 미이라에서도 문신한 흔적이 발견됐다. 문신 관행은 중국에서는 죄인들에게 내리는 형벌로 쓰여졌고 구약 레위기에는 문신을 하지 말라는 계명이 들어 있기 때문인지 중국인과 유대인들 사이에는 드물지만 고대 이집트뿐만 아니라 유럽과 아메리카 인디언들 사이에도 널리 퍼져 있었다. 90년대 들어서는 미국과 유럽의 젊은 세대 사이 다시 유행하고 있다.

아직도 몸에 문신을 새긴 흔적이 남아 있는 안토니오 비야라이고사가 예상을 뒤엎고 LA시장 선거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했다. 불과 수개월 전까지 같은 히스패닉계인 하비어 베세라보다 낮은 지지율을 기록했던 그가 제임스 한을 여유 있게 따돌리고 30%란 득표율로 결선에 진출했다.

멕시코시티 푸줏간 점원 출신을 아버지로, 수녀들에 의해 길러진 고아를 어머니로 이스트 LA에서 태어나 동네 갱들과 어울려 다니다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한 그가 21세기 LA 첫 시장을 바라보게 됐다는 것은 그야말로 한편의 드라마다. 술주정뱅이였던 아버지는 길거리에서 싸우다 얻어맞고 들어오면 어머니를 패는 폭력배였으며 그나마 비야라이고사가 5살 때 집을 나갔다.

한낱 거리의 불량배로 평생을 경찰서와 교도소를 전전하며 보낼 수도 있었던 그를 히스패닉 커뮤니티의 ‘떠오르는 별’로 만들어준 것은 그의 어머니다. 비야라이고사는 지금도 만나는 사람마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어머니 때문”이라고 어머니 칭찬을 입버릇처럼 되뇌이는 효자로 소문나 있다. 그의 어머니는 공부도 제대로 못하고 평생 집 한 채 가져 본 적이 없는 여성이었지만 틈나는 대로 책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아들에게도 항상 “너는 뭐든지 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불러 넣어 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번 예선에서 샌퍼낸도 밸리에서 이스트 LA까지 전지역에 걸쳐 백인 리버럴과 유대인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히스패닉 표를 휩쓴 것은 물론 유대인 표도 유대인인 소보로프보다 더 받았다. 오직 선친인 케네스 한 때부터 흑인 커뮤니티와의 관계가 돈독했던 사우스 센트럴에서만 제임스 한에게 뒤졌다. 노조운동가 출신이면서도 비즈니스맨과 잘 어울리고 히스패닉이면서도 백인과 유대인의 폭넓은 지지를 받는 그의 친화력은 ‘거리의 사나이’로 주먹을 휘두르던 시절부터 유명했다고 한다.

아버지 없는 빈한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기 힘만으로 라티노 정치인의 선두 주자로 떠오른 그는 바람피우는 버릇까지 여러모로 클린턴과 닮았다. 그가 100여년만에 처음 라티노 LA시장이 될 지는 아직 두고 봐야겠지만 이스트 LA 갱단 출신의 그가 지금의 자리에 섰다는 것만도 먼 훗날 일로 여겨지던 히스패닉의 정치 실세화가 현실로 다가왔음을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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