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과서 왜곡 뉴스를 보며.
요즈음 한국 뉴스는 온통 일본 교과서 왜곡 문제로 시끌벅적이다. 뉴스를 읽고 들으면서 답답한 마음 금할 길이 없었다. 한마디로 그럴 줄 몰랐던가 하는 생각이다.
몇년 전, 일본 선교사이면서 여류작가인 C씨로부터 들은 얘기다. "일본에 있으면서 제일 부끄러운 것은 한국 정치인들의 일본 방문 내용을 담은 TV 뉴스가 나올 때예요.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거만한 모습으로 일본 대신들과 얘기를 하면서 무턱대고 ‘사과하라’고 강요하곤 해요. 그럴 때 일본 정치인들은 머리를 조아리며 ‘하잇’하고 대답하지요. 그러면 한국 정치인들은 무슨 승리라도 한양 거들먹거리는 거예요. 일본 정치인들이 진정으로 사과한 줄 아는가 보죠? 저들이 속으로는 한없이 경멸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하나요."
더 이상 얘기를 안 들어도 그 장면들이 훤히 보이는 듯 했다.
일본인들의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은 일본의 여류작가인 야마자키 도요꼬의 작품 ‘두개의 조국’을 읽을 때 분명히 깨달은 바였다. 이 작품은 치밀한 구성과 2년여에 걸친 거의 완벽한 조사를 통하여 어려운 전쟁사를 소설로 형상화했다는 데에 특별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참으로 감동적인 그 작품을 읽어가던 나는 마지막 판에 가서 부글부글 끓는 분노가 가라앉지 않아 한참을 애먹어야 했다. 제2차 대전과 진주만 공격에 대한 전쟁재판을 기록한 작가의 태도 때문이었다. 전 3권중 마지막 권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는 이 재판기록은 작가의 냉정하고 치밀한 지성이 번뜩이는 글이었지만 작가의 생각은 자기중심적인 황국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예를 들면 2차대전 중 한국이나 만주에서 약탈을 자행한 행위에 대한 다음과 같은 변명이다.
"세계 최강의 미영을 상대로 하는 전쟁이므로 쉽게 승산을 찾아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일본으로서는 생존에 필요한 자원이 있는 지역으로 진출하여 적의 공격을 분쇄하면서 버티어 가는 수밖에 없었다."
전쟁중 포로에 대한 잔학행위에 대해서는 "국제 사회에서 엄격히 지켜져야 할 조약을 배우지 못했던 장병들이 살아서 포로가 되어 그 수모를 당하지 말라는 정신으로 포로를 다룬 사실이 지금 벗어날 수 없는 전쟁범죄로 문책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전범자들은 한결같이 자기들이 전쟁을 일으킨 것은 어디까지나 미영제국들이 고철과 석유공급을 봉쇄했으므로 자구책으로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들의 말 어디서도 자기들이 일으킨 전쟁 때문에 한국 등 동남아의 국민들이 당한 고통에 대해 미안해하는 마음은 찾아볼 수 없었다.
또한 "진주만도 기습 공격한 것이 아니다. 전쟁 1분 전에만 통보를 해도 기습이 아닌데 당시 미국에 있던 일본 대사관에 한시간 전에 통보를 했지만 대사관의 여직원이 타이프 치는 시간을 끄는 바람에 공격 후에야 통보를 하게 된 꼴이 된 것이다"라고 변명하고 한국 등 동남아시아에 진출(침략을 그렇게 표현)한 것도 오로지 미국이 일본인의 이민을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고 전쟁 중의 행한 잔학행위도 상대국 포로들에게 포로 같은 입장이 되어선 안 된다는 선한 교훈(?)을 주기 위해서였다는 자기당착과 자기중심적인 해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도요꼬는 하와이 대학의 객원교수로 있었던 일본의 지식인이다. 보통 일본 지식인 중의 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녀의 생각은 일본 대다수 지식인들의 생각과 일치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펄쩍 뛴다고 해서 저들의 뿌리깊이 박힌 황국적 사관이 바뀔 수 없다.
한국의 정치인들에게 간절히 부탁하고 싶다. 제발 대권전쟁 따위에 정신이 뺏겨 백성들 울게 만들지 말고 차근차근 우리의 실속을 차리고 우리나라 좋은 나라 만들기에 전념해 달라는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일본을 능가하는 정치, 경제, 문화와 국민 각자의 도덕성, 인격의 성숙을 위해 힘써야 한다. 그럴 때, 일본의 왜곡된 황국사관에도 의연히 대처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