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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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체류자를 사면해야 하는 이유

2001-04-1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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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준 (노동상담소 소장)

LA 한인사회가 안고 있는 숱한 문제중 가장 등한시되고 있는 것의 하나가 불법체류자다. 불법체류자들의 고통을 몰라서 그런 것은 분명 아니다. 특히 자신의 가까운 주위를 돌아 보라. 친한 사람들 중 10명에 2명 정도는 불법체류자들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들로부터 흔히 듣는 얘기는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직장 환경이 불결하고 위험하며 불안정하고 미래가 없으며 저임금의 장시간 노동이 요구된다", "직장에서 일하면서 억울한 일을 당해도 제대로 항의 한번 못하고 참고 지내야 하며 운전면허증을 받을 수가 없어 출퇴근하는 일조차 너무 불편하다", "자녀들 공부시키려고 미국에 어렵게 왔는데 이민신분 때문에 대학을 보낼 수가 없다", "정부로부터 필요한 어떤 혜택도 받을 수 없으며 불법체류자라는 것 때문에 항상 주눅들어 산다" 등이다. 또 이들이 자신의 신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당한 피해 사례들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예를 들자면 "취업이민 신청해준다는 말에 목이 매인 채 몇 년을 혹사당했다", "애써 모은 돈을 이민신분 바꾸려고 변호사에게 모두 바쳤다", "위장 결혼해 준다고 하더니 돈만 받고 사라졌다" 하는 얘기는 주변에서 몇 번씩은 들어봤을 것이다.

더 나은 삶을 향유하기 위하여 주거지를 옮기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하지만 요새는 개인적인 의지 외에도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로 인한 경제 파탄으로 외국으로의 이민을 강요당하는 인구들이 늘고 있다. IMF이후 이곳 한인타운에서도 한국에서의 경제적, 사회적 압박을 못 이겨 이곳 미국으로 밀려오는 합법, 비합법 이민자들의 힘겨운 얼굴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미국에는 현재 약 600만 명의 불법체류자들이 저임금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이들의 경제활동이 미국경제발전에 막대한 기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들은 사회에 대한 책임도, 사회로부터 받을 수 있는 혜택도 전혀 없다. 한인사회의 불법체류자들의 문제는 더 이상 개인적인 문제로 국한시켜서는 안 된다. 이들은 분명 한인사회를 구성하는 커다란 부분이며 한인사회 전체가 해결해야 할 공동과제이다. 불법체류자들의 신분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대사면이다. 그러나 한인사회에 ‘대사면’이란 말이 생소한 단어다. 80년대 초반의 한인사회에는 불법체류를 하고 있는 한인들의 숫자가 극히 적었다. 따라서 1986년의 대사면으로 혜택을 받은 사례도 적었다.


한인사회에서는 불법체류자들의 어려움을 아는 사람은 많지만 자신들의 시간을 투자해서 문제 해결을 하려고 나서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실제적으로 불법체류자의 문제는 개인적인 노력으로 해결할 과제도 아니며 몇몇 사람이 영주권을 받는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사실 이 문제는 한인사회의 각 단체들이, 그리고 나아가 한인사회 전체가 발벗고 나서서 타 소수민족 사회와 힘을 합하여 연방정부 차원에서 해결하도록 요구해야 하는 어려운 싸움이다. 주체적인 힘도 필요하고 미국의 정치 경제적인 조건도 맞아야 이루어 질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이 조건이 성숙 될 것을 앉아서 기다릴 것이 아니라 우리 한인사회에서도 대사면을 요구하는 대행진에 한발자국 내딛어야 한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미국 역사 속에 길이 남을 이민자들의 민권운동, 대사면운동에 우리 한인들도 앞장서 참여하여 결국에 이루어 낸다면 이국생활에서 정말 멋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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