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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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급한 한국의 언론개혁

2001-04-0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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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주 (한국인권문제연구소 상임고문)

4월 6일을 한국에서는 ‘신문의 날’로 지키고 있다. 선각자 서재필 박사가 105년전 이날 <독립신문>을 창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1884년 12월 ‘3일 천하’로 끝난 개화당의 쿠데타에 가담해 실패함으로써 ‘역적’이 되어 3대 가족을 모두 잃었던 그는 미국에 건너와 의학박사가 되고 미국여성과 결혼해서 미국시민이 되었으며 또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 중심지에서 개업까지 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무능하고 부패한 봉건적 수구세력 때문에 기울어져 가던 조국을 자나깨나 잊지 못해 12년 만에 귀국해서 착수한 첫 사업이 순 한글판과 영문판으로 된 <독립신문>의 창간이었다.

서재필 박사는 이 신문을 창간한 뒤 독립협회를 세워 서울에 독립문을 세우고 독립관과 독립공원을 만드는 한편 만민공동회를 열어 일반국민이 정부요인들과 더불어 나라 일을 자유롭게 토론하도록 가르쳤다. 이 일에 윤치호를 비롯해서 이상재와 이승만 그리고 안창호가 그의 뒷받침으로 앞장서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공개적이고 민주적인 토론에서 공격을 받은 보수정권에서는 외세의 부추김을 받아 서재필 박사를 추방함으로써 개혁운동을 차단하고 말았다. 그 결과는 국권상실이었고 겨레의 노예화였다.

그런데 보기에 따라서는 오늘날 한국의 민주화와 개혁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불행하게도 일부 언론이라고 해서 지나친 말일까. 요즈음 한국에서 일부 시민단체와 일부 언론인들이 종교계와 학계의 도움을 받아 언론개혁을 부르짖고 있는 사실은 이러한 주장을 어느 정도 뒷받침해 준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시민 언론개혁운동은 국민의 정부에서 시작한 언론사 세무사찰의 시비에서 시작된 것이 사실이지만 실제로는 오랫동안 지체되어 왔던 한국의 사회적 과제 가운데 하나이다. 지난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30여년 동안의 군부통치가 남긴 불행하고 불미스러운 유산청산작업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에 길들여졌던 언론만은 성역처럼 제외되어 왔었다.

사실 지난 몇 해 동안 한국언론이 시대의 변화와 함께 새로운 국민적 요구에 불감증을 보이면서 자체의 개혁에 무관심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어두운 시절에 굳어졌던 권언유착(權言癒着)의 체질 때문이었다. 지난날 체제내 한국언론이 역대장군독재자들에게 보여주던 꼴불견의 교태를 상기시켜서 무엇하겠는가. 일부에서는 바로 그것이 겨레의 수난을 외면한 채 외세에 아부했던 친일 언론의 유산이라고 주장하지만 필자는 그렇게까지는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오늘날 지탄받고 있는 한국의 일부 언론에게 ▲사회 각계각층이 언론에 적극 참여하도록 장려하고 ▲분단상황을 이용해 이익을 보려는 태도를 버리며 ▲계층간 대립과 지역적 갈등을 조장하는 재벌 언론 개혁에 앞장설 것을 말하고 싶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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