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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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 생각하는 삶

2001-04-0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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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에세이

▶ 권기준 <사회부장>

본보 옥상에서 바라보는 그리피스 팍 산자락은 행콕팍의 수려한 고목들과 원근의 감각을 이루며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답다. 뒤뜰의 자목련 꽃망울은 오늘도 터짐을 주춤거리고 있는데 행콕팍 동네의 고목들은 어느새 4월의 옷을 갈아입었다. 정말 오래간만에 진하게 세월을 느꼈다.

잠시 넋을 잃고 행콕팍의 4월을 보고 있노라니 요즘 한인사회가 참으로 조용하다는 생각이 든다. 교계가 부활절을 앞두고 분열양상을 보여 다소 실망도 주지만 그동안 사회부 데스크에 하루가 멀다하고 올라오던 단체들의 편싸움 모임이나 비난 기자회견을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큰 강력사건도 없다.

아침마다 뉴스를 찾느라 애를 먹기도 하지만 모처럼 조용한 한인사회를 접하고 보니 ‘한인사회가 이렇게 조용할 때도 있구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백범 김구 선생은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에서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가 생활을 영위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고 강조했다. 욕심부리지 않는 절제의 도를 설명한 것이다.


그동안 한인사회가 하루가 멀다 않고 시끄러웠던 것도 살펴보면 절제하지 못하고 모두가 욕심을 부렸기 때문이다. 자기의 분수를 잊고 욕심이 가득한 사회는 항상 분열이 생기고 단합이 되지 않는다. 욕심이 있는 사회의 표정은 불만이 가득하며 밝지가 않다. 그래서 욕심이 있는 사회에는 문화가 없다. 문화가 찾아들지도 않고 자라지도 않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한인사회에 이렇다할 문화행사가 없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욕심을 경계하는 훈계는 구약의 잠언에도 나온다.

야케의 아들 아굴이 죽기 전에 꼭 두 가지를 이루어달라고 간구한 기도가 그것이다. 하나는 ‘나로 하여금 허탄(虛誕)과 거짓말을 하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가난하지도 않고 부(富)하지도 말게 해달라는 것’이다.

잠언은 가난하지도 않고 부하지도 말게 해달라는 것은 너무 가난한 나머지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도적질을 하는 인간 이하의 생활을 면케 해주시고 너무 배가 불러 주신 이의 은혜를 잊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라고 부연하고 있다. 감사를 잊게 하는 욕심을 갖지 말 것을 간구하는 숭고한 도덕률이다. 감사가 있고 욕심이 없는 사회는 어디를 가도 조용한 질서가 있고 넉넉한 인정이 넘친다.

세월과 감사를 생각하는 동안 지난 몇 주간 여러 가지 모습으로 이어진 죽음들이 떠올라 옷매무새를 다시 했다. 많은 재산을 남기고 간 정주영 회장의 죽음, 14세에 세상을 떠난 소아암 김동욱군의 안타까운 죽음, 그리고 수년 전 이맘 때 갓 불혹을 넘긴 나이에 요절한 동네친구 장군의 어이없는 죽음.

영원히 살 것 같지만 결코 영원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죽음에 순서도 없고 예고도 없다. 이것이 죽음의 법칙이다. 누군가 죽음을 주머니 속의 유리잔으로 비유했던가. 우리는 주머니 속에 유리잔을 갖고 다니는 존재다. 유리잔을 안고 욕심을 부리고 허세를 부려 보라.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깨질지 모를 일이다.

4월의 길목에서 한 잔의 차(茶)를 마시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자신을 한번 둘러보자. 그리고 ‘내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져보자. 녹슨 곳은 갈고 닦고 휴식도 취하고 결단도 하고 봉사도 하고 더 진실한 삶을 다지고 보이지 않는 영원을 위한 준비도 하자.

남보다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욕심이다. 남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된다. 도와주는 삶, 그런 삶들이 많은 사회는 웃음이 넘치고 밝아진다. 이 봄에 먼저 봉사하고 도와주는 삶을 찾아 나서자. 그래서 곳곳에서 음악회가 열리고, 연극이 열리고 젊은이들의 기타소리가 들리는 그런 타운을 만들어 보자.

아름다운 한인사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만 같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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