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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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미국의 얼굴

2001-04-0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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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석정<일리노이주립대 교수>

최근 발표된 2000년도 미국 총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캘리포니아에 사는 백인들의 숫자가 50% 밑으로 떨어졌다. 이제 캘리포니아주에는 과반수를 차지하는 인종이 없다는 얘기다. 아시아계 주민들이 계속 늘어 이제 주 전체 인구의 11%에 달하는가 하면 히스패닉 인구는 무려 3분의1에 육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캘리포니아에는 자신이 한 인종 이상의 혼혈이라고 응답한 사람이 전체 주민의 4.7%라고 한다(미국 전국적으로는 2.4%).

이러한 추세는 캘리포니아뿐 아니라 미 전역에 확산되고 있어 얼마 안 있으면 미국 전체적으로도 다수인종이 없게 될 것이라 한다. 미국의 얼굴이 변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아직도 ‘미국사람’ 하면 피부가 희고 코가 큰 푸른 눈의 백인들만 생각하기 쉬운 우리들도 이제 미국의 얼굴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다.

총 인구 2억8,000만을 초과하게 된 미국은 이제 그 어느 때보다도 인종적으로 다양한 모습을 띠게 되었다. 이미 인종박람회가 된 캘리포니아가 아니더라도 전국 각지에서 그리고 각계에서 우리는 얼굴빛이 다른 여러 인종의 사람들을 쉽게 마주치고 있다. 지난 1월 출범한 부시 행정부의 각료들만 봐도 흑인인 콜린 파월 국무, 롸드페이지 교육장관을 비롯해서 중국계인 일레인 차오 노동, 일본계 노만 미네타 교통, 그리고 쿠바 출신의 멜 마티네즈 주택장관 등 ‘무지개’ 내각을 이루고 있다.


이제 ‘와호장룡’이라는 중국영화가 세간의 인기를 휩쓸면서 오스카 작품상을 넘보게 된 현실에서는 더 이상 모든 분야에서 백인들만이 주류를 이룬다고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미국의 복합성, 다양성은 더욱 두드러지고 돋보인다. 200여 인종이 모여 사는 미국, 전 세계의 성(姓)씨가 거의 다 있는 미국은 실로 잡동사니의 나라이다. 세계화의 시대에 이 잡동사니의 나라에 살면서 우리들이 갖추어야 할 것은 이 복합성, 다양성을 이해하고 수용하고 추구하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1월 취임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이 한 나라를 이루고 있는 것은 미국에 사는 사람들이 같은 핏줄이나 혈통 또는 같은 지역 출신이기 때문이 아니라고. 세계 각지에서 들어와 살고 있는 미국민들의 핏줄이 다 다르고 출신지역이 다 다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미국이 하나로 될 수 있는 것은 혈통과 출신지역을 뛰어 넘는 공통된 이상과 목표가 있기 때문이라고. 건국 당시 조지 워싱턴이 미국을 다스릴 때와는 사뭇 다르게 이제 21세기를 맞아 엄청나게 다양해지고 있는 이 미국사회를 다스릴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미국의 다양성을 어떻게 조화시키며 승화시켜 나갈 것인가에 대해서 지도자로서의 의지와 신념을 새삼스럽게 다짐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에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미국사회를 놓고 여러 가지가 녹아서 하나로 되는 용광로라고 일컫든지 아니면 각자가 그 고유한 특성과 맛을 간직한 채 조화하는 샐러드 그릇이라고 하든지 간에, 다양성 그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고 그 다양성이 갖는 힘을 부정할 수는 없다. 혹자는 그 다양성 때문에 미국은 오히려 인종문제를 비롯해서 골칫거리를 안고 있다고 할지 모르지만 획일성보다 다양성이 힘을 갖는다는 것은, 하나에 같은 하나를 더하면 둘밖에 안 되지만 하나에 다른 하나를 더하면 셋도 되고 넷도 되는 이른바 상승효과 또는 시너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얼굴이 계속 변하고 있는 미국사회는 그래서 앞으로도 세계 각국의 문화와 풍습과 종교와 언어를 더욱 폭넓게 수용하면서 계속적인 융화발전을 모색할 것이다. 아제르바이잔에서 짐바브웨에 이르기까지, 핫도그에서부터 스모가스보드, 화히타, 김치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다양성을 포용하면서 미국은 E Pluribus Unum(다수로부터 하나)을 이루려는 그의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다양성을 모르고 커온 우리들이기에 이를 배우고 익히는데 분발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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