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LA판 생이별

2001-04-0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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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요즘 서울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만 쉬고 있다. 제2의 고향이던 남가주에서 강제로 쫓겨난 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신세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10여년 만에 돌아온 한국은 다시 정붙이고 살기에는 너무 변해 있었고 마땅히 할 일도 없어 지금으로서는 앞길이 막막할 따름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A씨는 남부럽지 않은 이민생활을 해왔다. 작지만 가든그로브에 낸 식당도 벌이가 괜찮았고 가정생활도 원만했다. 남달리 술을 좋아한 것이 화근이었다. 식당일 보고 있던 어느 날 점심 때 느닷없이 경찰이 들이닥쳐 A씨를 체포해 갔다. 음주운전 혐의로 걸린 후 판사가 명령한 운전교육장에 출두하지 않았다는 게 죄목이었다.

4번이나 음주운전으로 걸린 경력이 있어 이력이 난 데다 ‘운전교육 한번쯤 안 받았기로서니 무슨 큰 일이 있으랴’고 생각한 게 잘못이었다. 철창 신세를 진 후 풀려났지만 바로 이민국으로 넘겨져 추방절차를 밟은 후 집에는 가보지도 못하고 한국으로 강제 추방됐다. 영주권으로도 평소 별 불편을 느끼지 못해 시민권을 따두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실수였다.


요즘 한인타운에 A씨와 비슷한 사연으로 생이별 당한 한인 가정이 하나둘이 아니다. 97년부터 이민법이 바뀌면서 범법자 추방이 엄청나게 엄격해졌기 때문이다. 1년 이상 감옥에 갔다온 사람은 출옥과 동시에 이민국 수용소에 수감됐다 자동적으로 추방된다. 전에는 미국에 산 기간이 오래됐거나 전과가 없거나 죄질이 나쁘지 않을 때는 판사에게 미국에서 계속 살게 해달라고 청원하는 제도적 장치가 있었으나 이제는 모두 없어졌다. 이로 인해 지난 수년간 추방당한 한인 숫자가 수백 명에 달한다는 것이 관계자들 얘기다. 일단 추방되면 다시는 미국에 들어올 수 없다.

한국 생활 경험이 있는 한인 1세는 그래도 좀 낫다. 어려서부터 미국에서 자라나 한국말도 서툴고 물정도 모르는 1.5세는 한국에 가면 그야말로 찬밥이다. 그나마 영어가 좀 통하는 이태원 일대로 다들 몰리는 바람에 아예 미국에서 추방된 1.5세가 같이 사는 합숙소까지 생겼다는 것이다.

미국 생활을 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법을 어겨 잠시나마 철창 신세를 지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그렇다고 가족을 갈라놔 평생 못 보게 한다는 것은 너무 비인도적이란 생각이 든다. 다음 주 있을 선거 때문만이 아니라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자격이 되는 사람은 하루 바삐 시민권을 따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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