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현대와 금강산 관광사업

2001-04-0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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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 칼럼

금강산 유람선을 타면 유난히 눈에 뜨이는 것이 노인관광객이다. 대부분의 관광객이 할아버지, 할머니고 그것도 서울사람 아닌 영남, 호남, 충청도 지방에서 온 노인들이다. 젊은이들은 “아니 이거 효도 관광단 아냐?” 하며 실망한다.

두드러지는 장면은 또 하나 있다. 유람선 안에 있는 카페, 포장마차, 술집, 나이트클럽, 스카이라운지, 노래방 등에 손님이 없다. 밤이 되면 음악은 사방에서 퍼져 나오는데 손님은 하나도 없으니 들여다보는 사람이나 그곳에서 일하는 유람선 직원이나 민망스럽기 짝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관광객 대부분이 노인이다 보니 나이트클럽이니 스카이 라운지니 하는 것이 어울리지 않거니와 첫날 관광에서 금강산을 오르내리다 보면 저녁에는 녹초가 되어 방에서 코골기 바쁘다. 잠이 없는 연령층이라 새벽 해돋이 보기에는 사람 많은 것도 이색적이다. 우리 일행은 4명이었는데 스카이라운지에서 칵테일을 하는 동안 러시아 피아니스트와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우리들만을 위해 고용된 것처럼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연주했다.


유람선에서 3일을 머무는 동안 “이래 가지고야 현대가 금강산 관광에서 돈을 벌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절로 떠오른다. 배에 탄 관광객이 유람선 선원 수보다 적으니 말이다. 직원은 300명인데 손님은 150명이다. 기가 찰 노릇이다. 1,200명의 관광객을 태우는 유람선의 객실이 대부분 비어 있으니 서비스 하나만은 최상급 수준이었다.

물론 11월부터 3월까지의 5개월은 비수기라 그렇다 하지만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금강산 관광을 전담하는 ‘현대아산’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계약서에 의하면 현대가 금강산 관광을 둘러싸고 북한에 지불해야 하는 돈은 98년 11월-2005년 2월까지 9억4,200만 달러다. 북한이 5년동안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는 막대한 금액이다.

대신 현대가 북한으로부터 얻어낸 것은 해금강, 삼일포, 통천, 시중호, 온정리 등 금강산 일대 200만평을 개발할 수 있는 독점권이다. “금강산 관광 붐만 일어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 현대의 계산이다. 문제는 붐이 일어날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오죽 했으면 며칠 전 현대가 “배 째라”는 식으로 북한에 지불하는 월 관광료를 1,200만 달러에서 600만 달러로 깎아 달라고 통사정을 했을까.

현대 측 계산에 의하면 금강산 관광객은 1년에 80만 명이 되어야 수지타산이 맞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현실은 연간 관광객이 20만 명 정도다. 그것도 엄밀한 의미에서 따지면 순수한 관광객이 아니라 대부분 현대직원과 가족들로 숫자가 채워져 있다.

관광객의 80%가 현대건설, 현대자동차, 현대조선, 현대증권, 현대상선의 직원이거나 현대에 납품하는 방계 회사들의 직원과 가족들이라니까 ‘제닭 잡아먹기식’ 관광사업이다. 순수한 관광객은 20%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에서 친지들을 만나 “금강산 구경 해 봤어?”하고 물어보면 대부분 “못해봤다”고 대답한다. 첫째 좀 비싸고(1인당 800달러), 둘째 남한 관광객 억류사건이 있은 후 금강산 구경 가는 것이 약간 으스스한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리운 금강산’은 1세가 가지는 감정이지 신세대인 2세들은 금강산보다 동남아 여행에 더 관심이 있다는 것이 설명 내용이다.


비즈니스가 잘되는 원칙은 간단하다. 지출이 수입보다 많으면 안되고 힘에 겨운 사업확장을 벌이면 안된다. 그런데 지금 현대의 금강산 관광사업은 이 두 조건을 다 갖추고 있다. 정주영씨의 고향이 금강산 부근(통천)이라 너무 북한과의 거래에서 감정적이 아니었나 하는 추측도 든다.

관광사업은 서비스업이다. ‘현대’하면 건설이나 중공업을 떠올리지 서비스업을 연상하는 사람은 드물다. 현대와 관광업은 체질상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무슨 비즈니스든지 뒷돈이 약하면 첫 주인은 고생만 하고 다음 주인이 돈버는 법이다. 현대가 재정난 끝에 금강산 사업을 다른 재벌과 공동 운영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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