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투표소 직원의 설움

2001-04-0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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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헨리 박 (LA시 선거국 근무)

나는 임시직으로 4월과 6월에 있을 선거 준비를 위해 일하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은 선거날에 봉사할 투표소 근무자(pollworker), 그 중에서도 특히 영어가 미숙한 한인 노인 유권자들을 도와 드리기 위하여 이중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한인 투표소 근무자들을 모집하는 것이 소관이다.

한인 타운내 영어 아닌 한국어 투표안내 책자를 요구한 한인 유권자 숫자가 20명 이상 되는 투표소가 89개 있다. 각 투표소당 한인 근무자 하나씩 보내드리기 위해 89명을 모집하는 것이 처음 목표였으나 한인 근무자를 모집하는 일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타운내 대부분의 한인 봉사기관들의 의외로 냉정한 반응에 당황했고 타운 내 대형마켓 몰에서 하루종일 홍보 해도 한 두명 모으기가 어려웠다. 어떤 날은 아예 꽝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한심했다. 수십 군데의 교회, 성당, 사절 등 종교단체도 찾아 다녔는데 과반수 이상이 비협조적이었고 어떤 곳은 아예 잡상인 취급하며 문도 안 열어 줘 처량했다. 아직 한인들의 저조한 봉사 참여와 투표소 근무자에 관한 인식이 부족한 것을 실감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베렌도 침례교회, 나성 한인 교회, 성바실 성당, 영락교회 등에서는 목사님과 신부님, 또 교인들을 만나 많은 도움을 받았다. 또 각 신문사, 라디오, TV 등 언론기관들의 협조로 어렵게 어렵게 30명이 조금 넘는 한인 투표소 근무자들을 모집하여 한국어로의 도움을 요구한 숫자가 적어도 50명 이상 되는 타운내의 39개의 투표소에 그 분들이 근무하게끔 되었다. 그나마 한인타운 역사상 이렇게 많은 한인 투표소 근무자가 배치된 것은 처음이다. 이번 선거에 관해 문의 사항이 있으면 1-800-994-8683이나 1-866-899-8683으로 연락하면 지나 서씨가 친절하게 한국어로 안내해 드린다. 그러니 이번 선거 때는 한인타운에서는 영어가 부족하더라도 걱정말고 모두 투표에 참여하길 바란다.


꼭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한인 노인들의 투표 참여율은 높은데 한인 청장년 유권자들의 투표율이 불과 10%를 조금 넘는다는 것이다. ‘나 하나쯤 안해도 된다’는 생각은 하지말고 남보다는 나를 위해 하는 것이니 바쁘면 부재자 투표라도 하라고 부탁하고 싶다.

투표권 행사는 권리가 아니라 특권이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 같은 소수 민족에겐 마음에 와 닿는 말이다. 지난번 4.29 폭동 같은 억울한 일을 당한 것도 우리 힘이 부족해서다. 주류 정치인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선 일단 모두 적극적으로 투표부터 하여야 할 것이다.

미국은 자원 봉사자들의 봉사로 운영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좋은 예로서 이번 LA 시장 선거때 2,100개 이상의 투표소에서 1만명 이상이 투표소 근무자로 봉사한다. 한국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도 좋겠지만 보다 성숙한 코리언 아메리컨의 모습을 미국인들에게 이러한 봉사활동을 통하여 보여줄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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