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조기 유학 대망론

2001-04-0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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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적이 한 집에 들었다. 집안을 샅샅이 뒤졌으나 돈 될만한 게 아무 것도 없었다. 도적은 하도 어이가 없어 주인을 깨웠다. ‘도대체 뭐해 먹고사는 사람인가’ 궁금해서다. 주인은 자신을 교수라고 밝혔다. 그리고는 이불 밑에서 아주 낡은 노트 한 권을 꺼내더니 이것으로 한 평생 먹고살았다고 했다. 도적은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진짜 도적놈일세"

아주 오래 전의 우스개 이야기다. 박봉의 교직과 그나마 ‘한번 교수는 영원한 교수’로 결코 교단을 떠나는 일이 없는 한국의 교육 풍토를 빗대 나온 이야기다.

조기 유학이 또 다시 논란이 되고 있는 모양이다. 주로 미국으로 치우쳐 있던 조기 유학의 대상지가 다변화되면서 제기되는 논란 같다. 영어권인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은 물론이고 필리핀 등지에도 한국의 조기 유학생이 들끓게 된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보도다.


조기 유학의 바람은 중국에도 불고 있다는 소식이다. 중국을 최근 다녀온 한 선교사는 그 바람의 실상을 이렇게 전한다. "중국에 있는 한 외국인 학교의 수업료는 연간 2만달러 정도 든다. 그런데도 적지 않은 초등학교 아이들이 부모와 떨어져 유학을 하고 있다."

조기 유학을 다루는 한국의 보도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중국 조기 유학 바람도 결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다루고 있는 느낌이다. 영어가 세계 공용어이니 만큼 미국 등 영어권 조기 유학은 그렇다고 쳐도 웬 중국 조기 유학인가 하는 시각이 깔려 있는 듯하다.

이와 함께 공교육이 무너졌다는 등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상당히 시끄럽다. 한 학부모는 이렇게 말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장관이 바끨 때마다 교육을 개혁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했으나 교육개혁은 오히려 개악쪽으로 진행됐다. 한 달에 170만원 벌어 과외비 75만원 지출하면 매달 적자다. 그래서 이민 신청을 해뒀다."

문제는 한국의 공교육 시스템이 경쟁력이 없다는 데 모아지는 것 같다. 그래서 과외를 시키고 또 아예 조기 유학을 시키는 등 학부모들이 조바심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공교육 시스템은 그렇다고 치고 조기 유학을 결코 막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다. 비단 영어권뿐이 아니라 중국에도 가능하면 조기 유학을 많이 보내는 것이 한국이라는 국가사회 발전을 위해 좋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의 세상은 전 지구가, 전 인류가 하나가 되는 세상이 되어서 하는 말이다.

조기 유학에 실패하는 학생이 분명 한 둘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들 모두가 인생의 실패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나름의 안목을 키우고 시야를 넓힌 게 언젠가는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미국으로, 중국으로, 유럽으로, 러시아로 더 많은 젊은이들이 나갔다가 돌아오고 또 나가고 돌아오면서 한국이 커지는 게 아닐까. 심심하면 재연되는 조기 교육 논란. 어딘지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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