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내가 아니어도 된다

2001-04-0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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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숙녀 (전 이화여대 뉴욕지구 동문회장)

한국 역사 가운데 가장 의미 있는 사건의 하나가 일본의 식민정책에 항거하여 일어났던 3.1운동이라면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가장 중대한 사건은 이집트 노예생활에서 벗어난 출애굽 사건이라고 본다. 미국 역사 중에는 링컨 대통령의 흑인 해방 또한 위대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내 가까이에는 이름조차 가지지 못했던 여성들의 해방을 평생의 과업으로 알고 살다간 김활란 박사의 업적도 잊을 수 없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이런 역사들은 많은 용기와 희생과 끈질긴 노력, 그리고 그 일에 동참하는 사람들 각자의 결단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런가 하면 우리는 과거와는 판이하게 다른 시대에 살면서 여러 방법으로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구속을 의식하지 못한 채 살거나 의식하면서도 그 명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기도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타인을 받아들일 수 없는 무서운 아집의 노예가 되어 있고 권력의 노예가 되어 있으며, 권위의 노예가 되어 있다.

한인단체는 어디를 가도 낡은 사고방식의 노예가 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독선과 권위, 선배의식에서 기득권을 주장하는 것부터, 나이가 많으면 어떻고 하는 유교사상(옳지 않아도 나이를 존중해서 무작정 따라야 한다는 사고방식) 등등…

이런 노예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자문해 본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단체에서, 직장에서 등 어느 곳에서든지 우리를 노예화하려는 그 욕심에서 해방되는 길은 자기 해방에서부터라고 결론을 지어본다. 특히 오랜 역사를 가진 단체의 모임이나 또 선후배의 선을 분명히 긋고 있는 동창회 같은 곳에서는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아집의 속박에서 벗어나 “We Had the Past, You Have The Future”하면서 새 사람을 믿고, 훌훌 털어 버리고 웃음 지으며 떠나가는 자유인이 되는 개개인의 역사를 이루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되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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