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북한은 살려야 한다

2001-03-2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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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시각

▶ 마이클 팍스, 그레고리 F. 트레버튼 (LA타임스 기고)

부시 미대통령과 김대중 한국대통령의 정상회담은 외교적 참사였다. 결코 일어나서는 안될 사고였다. 부시 행정부의 아시아팀이 전혀 참가하지 않은 가운데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이번 정상회담은 한미 양국이 모두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양국 관계에 위험하기 짝이 없는 낭패를 가져왔다.

부시는 한가지 점만은 분명히 밝혔다. 자신이 북한을 전혀 믿지 않고 있으며 북한이 한국의 햇볕정책을 받아들여 그 전체주의를 포기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에 입각해 자신의 대북한 정책을 새로 시작하겠다는 점을 말이다. 공화당 의원들은 부시의 주장을 더 단호하게 되풀이하기까지 했다.

부시의 견해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결국에 가서는 부시 행정부도 클린턴 행정부의 입장으로 되돌아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클린턴의 대북한 정책은 지난 1994년에 양국 간에 합의된 골격에 따른 것이었다.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 제조를 포기하는 대신 미국이 식량과 연료, 핵발전 설비를 제공한다는.


클린턴 행정부의 그같은 합의는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클린턴은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제조를 포기하도록 만들기 위해 전쟁을 제외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었다. 전쟁까지도 고려했었으나 결국 화해의 방법을 택했다. 채찍 대신 당근을 택한 셈이고 악마와 거래를 맺은 것이다.

화해정책은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일으켰으나 7년 전 당시에는 북한의 조기붕괴는 어려운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 정책은 경제난국으로 인한 압력을 받고 있는 북한이 점진적인 개혁을 이루기를 기대하면서 북한에 대한 ‘생명보조장치’로 현재까지 유지돼 왔다.

한국의 햇볕정책도 작년 여름보다는 흐릿해진 것 같다. 북한의 김정일이 이번 여름 서울을 답방할 가능성은 높지만 지난해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방문 길에 내놓은 선물에 상응하는 보따리를 준비할 것이라고는 한국 정부나 야당 모두 믿지 않고 있다. 남북한간에 안전보장 이슈는 아직도 논의되지 못하고 있으며 북한은 아직도 이 문제에 대한 상대는 미국으로만 한정시키고 있다. 현대의 금강산 관광 프로젝트와 같은 남한 기업들의 대북한 경제사업은 밑 빠진 독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북한을 위한 ‘생명보조장치’ 유지는 한국과 미국 모두 합의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의 붕괴는 곧 재난을 의미하는 것이니까. 지난 1990년 시작된 서독의 동독 흡수는 아직도 채 완성되지 못한 값비싼 작업이다. 동독에 대비한 서독의 경제 규모는 북한에 대한 남한의 경제 규모보다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남한이 급속히 북한을 흡수한다면 남북한 모두 빈곤에 빠지게 된다. 통일한국은 미국과 일본 등 우방으로부터 끝없는 지원을 요구할 것이 분명하다. 통일한국은 또한 북한이 보유하고 있던 핵무기와 미사일을 계속 보유하게 될 것이다.

워싱턴 입장에서 북한이 대가를 내놓지 않으면 강경자세를 취한다는 전략은 그럴 듯하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강경정책은 앞으로 2년의 임기가 남아있는 김대중 대통령과 부시 행정부간의 틈을 더 확대시킬 것이다. 지난번 한미정상회담 후 한국내 햇볕정책 반대론자들까지도 부시가 자신의 미사일 방위시스템(NMD)을 정당화하기 위해 북한을 깡패국가로 몰아가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강경정책을 고집하면 남한 내에 반미주의가 본격화될 것이 틀림없다. 더욱이 북한은 핵카드를 다시 끄집어내 지난 1994년 별수 없이 화해를 택한 클린턴 행정부의 위치로 부시 행정부를 몰아 넣을 것이다.

대화와 생명보조장치 유지를 대체할 다른 대안은 없다. 그러나 부시 팀은 두 가지 점에서 클린턴 정책을 개선할 수 있다. 첫째, 꾸준한 외교적 접촉을 통해 북한으로 하여금 재래식 발전 설비가 핵발전 설비보다 낫다는 생각을 갖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둘째, 북한과 대화를 하는 과정에 남한과 일본을 포함시켜 양측간에 무엇을 주고 무엇을 받을 지에 대한 이정표를 설계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북한의 세계은행 가입을 미국이 지지하는 대가로 남북한, 미북한 간의 낭패를 보는 일을 줄인다는 것이다. 클린턴은 공화당 주도의 의회로 인해 그러한 이정표 수립이 어려웠지만 부시는 클린턴보다 더 나은 입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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