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진짜 선진국

2001-03-2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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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인류 역사상 가장 흉악한 인물중 1순위로 꼽히는 것이 히틀러다. 제2차 대전을 일으켜 수천만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600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했다. 히틀러가 도륙한 것은 유대인만이 아니다. 1939년 T4 프로그램을 창설, 독일인이라도 신체장애자, 정신박약아는 모조리 청소했다. 이런 ‘인간 쓰레기’들은 ‘아리안 민족의 우수성’을 선전하는데 걸림돌이 될 뿐 아니라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최근 미 언론에서 온갖 역경을 딛고 우뚝 선 한인 장애자 이야기가 연달아 쏟아지고 있다. 몇 달전 PBS가 전신이 마비돼 자기 손으로 물조차 떠먹을 수 없는 핸디캡을 이겨내고 뉴욕 검찰청 부장검사로 활약하고 있는 정범진 검사(33, 알렉스 정) 스토리를 소개한데 이어 피플지는 최근호에서 선천적 시각 장애자이면서도 펜실베니아 주립대학에서 프랑스어, 컴퓨터, 수학등 3개 학위를 받고 로즈 장학생으로 선발돼 옥스퍼드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 이정남(21. 재커리 배틀스)군 이야기를 대서특필했다.

정검사는 명문 조지 워싱턴대 재학 시절 교통사고를 당해 남의 도움 없이는 한시도 생활할 수 없는 장애자가 됐다. 정상인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고통속에서 남다른 노력으로 45명의 동료 검사를 물리치고 최연소 부장검사직에 올랐다. 이정남군도 태어나자마자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남에 손에 자라다가 3살 때 미국 부모에 의해 입양돼 오늘의 영광을 안았다.


최근 한국 언론에 보도된 오인호(9, 애덤 킹)군도 비슷한 스토리다. 남가주 모리노 밸리에 살고 있는 오군은 뼈가 굳어지며 다리가 썩어가는 희귀병에 걸리고 손가락마저 붙은 채 태어났다. 4살 때 미국인 부모의 3번째 양자로 미국에 온 오군은 수술을 받아 4개의 손가락은 떨어졌지만 하반신은 허벅지 아래를 모두 잘라야 했다.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저러고도 살 수 있을까” 의아해 하지만 오군은 만능 스포츠맨으로 주말이면 장애인 야구시합에 참가한다. 오군은 한국 프로야구위원회(KBO)의 초청을 받아 프로야구 시구를 위해 오는 3일부터 일주일 동안 한국을 방문한다.

남다른 핸디캡을 극복하고 꿋꿋이 살고 있는 장애인들도 훌륭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대단한 것은 피부색이 다른 이들을 자식으로 맞아 들여 보살펴 온 양부모들이다. 오군의 양부모도 친자식이 셋이나 있는데 4명의 한인 입양아를 포함, 8명을 입양해 키우고 있다. 이군의 양부모 또한 자신이 낳은 3남매 외에도 한국 등 3개국에서 대부분 장애자인 15명의 아이를 거둬들였다.

이들 장애인들이 한국에 남아 있었으면 지금과 같은 결실을 볼 수 있었을까. 목숨조차 부지하지 못했거나 요행히 했더라도 뒷골목을 전전하는 거지 신세를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미국은 지금 세계 유일의 수퍼파워다. 그러나 부와 군사력보다 장애인을 돌보는 미국민 개개인의 따뜻한 마음이 진정한 미국 힘의 원동력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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