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민바람, 걱정바람

2001-03-2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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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주영<본보 뉴욕지사 논설위원>

미국인들 사이에 요즘 한국인이라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는 소문은 매우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한인들의 추태나 불미스런 사건들이 심각할 정도의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인들의 잘못된 관행이나 습관이 미국사회에서 이따금 문제가 되어온 건 사실이나 사태가 이 지경이라면 좀 재고해 봐야 할 일이 아닐까. 짧은 이민역사 속에 한인들의 성과는 괄목하다 하겠지만 이미지 면에서 그와 같지 못하다면 과연 성공적인 이민이라 말할 수 있을는지.

나이가 들게 되면 당연히 그에 합당한 행동을 해야만 남의 눈에 거슬리지 않고 타인으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다. 이민사 30여년이 되었으면 이제는 한인들도 그에 걸맞는 행적이나 모습을 갖추어야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민족이 될 수 있다.


도덕적인 수준이나 질서관념이 따르지 못한다면 그것은 알맹이 없는 열매나 속 빈 강정과 다름이 없다. 우수한 두뇌, 경제적 자립으로 탁월한 민족이라고는 하지만 무례하고 무지한 민족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한국인들, 궂은 일이라면 빠짐없이 언론에 오르내리는 그런 모습이 바로 미국사회에 투영된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라면 곤란하다.

사실 미국사회에서 음주, 도박, 매춘 등에 의해 한국인의 이미지가 땅에 떨어진지는 이미 오래다. 요즈음도 현지 언론에는 한인 여성 마사지 팔러 이야기가 버젓이 지면을 장식하고 있어 너무나 부끄럽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또 다시 한국인들의 미국 이민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하니 걱정이다.

보도에 따르면 한국의 경제가 좋지 않아 전 국민의 82%가 미국에 이주를 희망하고 있다 한다. 지난 2년 새 뉴욕에 체류한 불법 한인 숫자만도 1만여명이나 되고 한국에서 미국이민을 고려해 오는 국제전화가 쇄도하고 있을 만큼 미국이민에 대한 열기가 대단히 뜨겁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에 과연 우리가 좋아해야 할지, 안타까워해야 할지 정확한 해답을 모르겠다. 통계와 같이 희망자가 너도나도 미국 이민 길에 오른다면 아마도 언젠가는 한국 땅이 텅텅 비어 역 이민을 장려하는 기현상이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반면에 미국은 한인들의 영향력이 증대되고 경제 전반이 활성화되겠지만 부정적인 측면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동포들 중에는 벌써부터 동족간에 있을 극심한 경쟁과 범람하게 될 각종 사회악, 현지 자녀 교육에 미칠 영향 등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인구가 늘어나면 문제는 자동적으로 많아지게 되어 있다.

우리가 이 땅에 자손만대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하는데 과연 도피심리에서 이민보따리를 싼 한인들이 너도나도 들어와 만드는 커뮤니티는 어떻게 형성될지 의문이다. 차이나타운, 유니언 상가, 코리아타운, 팰리세이드 팍과 같이 중국인이 와서 만드는 미국은 중국과 다름이 없을 게고, 한국인이 와서 만드는 미국은 한국 본토와 같을 것임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한국인에 대한 미국이민 쿼타가 연 평균 2만명씩 배정되어 있는 한 계속해서 이 숫자는 꼬박꼬박 들어올 것이고 우리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들과 같이 어우러져 살아야 하는 입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깨끗한 코리안 이미지’는 더욱 요구된다.

툭하면 계돈이나 거두어 달아나고, 사기나 치면서 동포들을 울리거나, 매너 없이 남의 눈살이나 찌푸리게 하는 그런 우(偶)는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남의 동네에 들어가면 우선 주민들과 잘 화합하고 무리 없이 지내야함은 지역사회 생활의 정석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과 같이 현지에서 요구되는 질서나 법규들을 지역 정서에 맞게 잘 지켜나가는 것은 주민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매너이다.

한인들이 늘어나 여기저기서 된장냄새, 김치냄새 피우는 것을 미국인들이 달갑지 않게 생각하리라는 것을 경험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다시 부는 이민바람, 한국인이 몰려온다’는 소식에 노파심이 드는 건 지나친 기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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