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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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우상’ 무너지고 있다

2001-03-2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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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북자 돕기 신동철 목사

부시 행정부 출범과 함께 탈북자에 대한 미 주류 언론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 달 초 뉴스위크지가 탈북자 특집을 게재한 데 이어 LA 타임스도 지난 주 이를 주요 기사로 다뤘다. 97년부터 탈북자 돕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신동철 목사를 만나 탈북자들의 근황을 들어봤다.


-최근 들어 미국 언론에서 탈북자 문제가 부쩍 자주 거론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공화당 행정부가 들어 선 후 북한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북한에 직접 들어가 볼 수는 없으니까 결국은 탈북자들 이야기가 주종을 이룰 수밖에 없습니다. 뉴스 미디어들도 핵협정이 어떻고 미사일 방위체제가 어떻고 해봐야 국민들의 관심을 별로 끌지 못하니까 사진이 곁들여질 수 있는 탈북자들의 휴먼 스토리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것 같습니다.



-부시 행정부가 앞으로 어떻게 북한을 상대하리라 보십니까.

▲현재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사람의 하나가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입니다. 북한을 폭격해서라도 핵개발을 막아야 한다는 강경파죠.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정책 연구소가 핵확산 반대 교육센터(NPEC)인데 작년 여기서 내놓은 보고서가 있습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해 ▲재래식 무기 감축을 요구하고 ▲제네바 협정에서 약속했던 원자력 발전소 대신 화력 발전소를 지어 주거나 아예 한국에서 전기를 보내주며 ▲북한의 인권을 거론해야 한다는 것이 그 내용입니다. 부시 행정부 출범후 나오는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앞으로 이 보고서 내용대로 대북 정책이 펼쳐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재 중국에 살고 있는 탈북자 수는 얼마나 되며 최근 동향은 어떻습니까.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적게는 10만, 많게는 30만 정도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남성들은 막노동으로, 여성들은 인신매매단에 팔려 가는 등 어렵게 살고 있지만 최소한 북한에서처럼 굶어죽지는 않습니다.


-10~30만이면 적은 숫자가 아닌데 그렇게 많이 국경을 넘는 것이 가능하며 이들이 먹고 살만큼 일자리가 있습니까.

▲중국-북한 국경은 사실상 통제가 불가능합니다. 두만강 같은 곳은 겨울에는 걸어서, 여름에는 헤엄쳐 쉽게 건널 수 있습니다. 경비원에게 발각되더라도 돈 몇푼만 집어주면 눈감아주는 게 보통입니다. 다행히 연변 농촌 조선족들이 대도시나 한국으로 빠져나가 딸리는 일손을 탈북자들이 메워주고 있습니다.


-북한 지도자를 보는 탈북자들의 시각은 어떻습니까.


▲94년 김일성 사망 직후부터 2~3년전까지만 해도 김일성과 김정일을 문자 그대로 우상처럼 받들었습니다. 먹고살기 힘들어서 잠시 넘어왔을 뿐이지 돈을 좀 벌어서는 다시 돌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김정일 개새끼’를 입에 담는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한번 넘어 오면 돌아갈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몽골에서 탈북자 돕기를 하다 체포된 적도 있는데 어떻게 몽골을 탈북자 피난처로 택했습니까.

▲중국 당국은 북한 눈치를 봐 탈북자를 색출해 돌려보내는 일이 있지만 몽골에서는 그럴 걱정이 없습니다. 한국에서 불법체류자로 일하는 몽골 노동자들이 15,000명쯤 되는데 이들이 송금하는 돈이 몽골 GDP의 10%에 달합니다. 몽골에서 굴러다니는 차의 태반이 고물 국산차입니다. 탈북자가 일단 몽골까지만 오면 한국은 들어갔다고 봐도 됩니다.


-중국에서 직접 한국으로 가는 수는 없습니까.

▲서류를 위조하거나 밀항선을 타는 수밖에 없는데 위험 부담이 크고 비용이 많이 듭니다. 몽골외에 합법적으로 한국으로 가려면 베트남을 거쳐 캄보디아나 태국까지 가야합니다. 이렇게 해서 한국에 들어온 사연을 들어 보면 한 편의 영화가 되고 남을 만합니다.


-일단 한국에 들어오면 모두 받아줍니까.

▲북한 사람도 법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이니까 거부할 수 없습니다. 최근 귀국 탈북자가 급속히 늘고 있습니다. 2년전만 해도 1년에 100명 정도이던 것이 작년에는 340명, 올해는 하루 3명꼴로 들어오고 있어 1,000명 정도가 예상됩니다.


-일단 들어온 탈북자들은 어떤 대우를 받습니까.

▲대성공사라는 호텔식 감옥에 수감돼 조사를 받습니다. 간첩으로 판명돼 즉시 교도소로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신원이 확인되면 하나원이라는 곳에서 취업교육등을 받은 후 서민 아파트로 옮겨지며 1인당 2만 달러의 정착금이 주어집니다. 수용인원이 100명 정도인데 요즘은 과포화 상태로 그 처리 문제를 놓고 정부가 고민중입니다.


-탈북자들이 한국사회에 잘 적응하는 편입니까.

▲힘듭니다. 사회주의 체제에 익숙해진 탈북자들이 경쟁이 치열한 한국사회에서 버티기 어렵습니다. 취직도 잘 안 될뿐 아니라 한 후에도 붙어있지를 못합니다. 일도 잘 하려 하지 않고 ‘기껏 조국을 찾아 왔는데 대우가 이 정도냐’며 불평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한국 국민도 정부도 탈북자들이 더 들어오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도 착취당하고 한국에서도 받아주지 않으면 이들이 갈 곳은 없습니까.

▲제가 몽골에서 잡힌 것도 이들을 위한 농장을 건설하려다 그렇게 된 것입니다. 독지가가 2만 달러를 내놔 그 돈으로 몽골에다 땅을 샀습니다. 유엔에 청원해 몽골에 난민촌을 건설, 김정일 정권이 무너질 때를 기다리거나 베트남 보트 피플처럼 대량으로 미국으로 이주시키는 것도 생각해 볼 만합니다. 내년에는 아주 몽골로 이주해 본격적으로 사업을 해보려 합니다.


-처음 어떻게 탈북자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까.

▲97년 우연한 기회에 중국과 북한 국경 지역에 갔다 탈북 어린이를 만났습니다. 그 맑은 눈망울을 보고 저들을 돕는 것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소명이란 확신을 얻게 됐습니다. 당시만 해도 탈북자들은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제가 준 50달러를 극구 사양할 정도로 순박한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후 고형식 변호사 주디 우드 유대계 인권 변호사등 뜻이 맞는 사람들과 탈북자 돕기 사업을 벌여왔습니다. 일을 하면 할수록 탈북자 스토리가 출애굽기에 나오는 유대인 이야기와 똑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하는 일에 ‘엑소더스 21’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그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몽골을 통해 한국에 입국시킨 탈북자수가 얼마나 됩니까.

▲80명 가까이 됩니다. 재작년까지 한국에 들어온 총 탈북수가 100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몽골은 이제 중요한 탈북 루트가 된 셈입니다.


-이 일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까.

▲그 전에도 그랬지만 DJ정부가 햇볕정책을 표방하면서부터는 탈북자에 대한 배려가 거의 없는 상태입니다. 하나원 증축도 김정일 눈치를 보느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 선교사들이 이들을 돕다가 매년 10여명씩 북한 공작원에게 살해되고 있지만 이는 한국 언론에 거의 보도되지 않고 있습니다. 선교사들이 중국 당국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 상용 비자등을 가지고 입국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에 이들이 죽으면 ‘한인 기업인 사업 비관 자살’정도로 기사가 납니다. 선교사가 비관 자살이라니 우스운 얘기입니다. LA등 한인사회에서도 탈북자에 대한 관심은 이제 거의 식은 상태입니다.


-많은 북한 학자들이 김정일이 권력을 확실히 장악했으며 북한 체제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의 탈북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은 북한 정권의 장악력이 사라져 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탈북한 사람이 북한으로 돌아갔다 다시 나온 이동 횟수(man-journey)를 추산하면 100만번이 넘습니다. 북한 사람들도 이제는 중국이 훨씬 자기들보다 잘 살며 못살고 있는 원인이 김정일에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김정일 체제의 붕괴는 시작됐으며 김정일은 제명을 다하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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