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꺼삐딴 리’와 L씨

2001-03-2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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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 전관용의 1960년대 단편소설 ‘꺼삐딴 리’의 주인공 이인국은 일제때 제국대학 의학부를 수석졸업한 엘리트 외과의사다. 자식들을 일본인 학교에 보내 일본어만 쓰게 하는 등 철저한 친일 분자 노릇을 하던 그는 광복후 소련이 북한을 점령하자 친일파로 지목돼 구금되지만 감방안에서 러시아어를 공부하고 소련군 장교의 혹을 수술해준 덕분에 위기를 벗어난다. 환심을 사기위해 아들을 소련으로 유학까지 보내지만 6·25가 나자 월남해서 병원을 차리고 악착같이 돈을 긁어 모아 치부한다.

유학간 딸이 미국인과 결혼하겠다고 하자 처음에는 ‘전신의 피가 역류하는’ 느낌을 갖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미국 대사관 관리에게 뇌물을 주고 자신도 미국행을 모색한다. ‘꺼삐딴 리’는 일제하에는 친일파, 북한에서는 친소파, 월남후에는 친미파로 변신을 거듭하며 사회지도층에서 군림해 온 철두철미한 기회주의자다.

극작가 오영진이 1949년 내놓은 희곡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의 주인공 이중생도 이인국에 못지않은 인물이다. 그는 일제하에 악질적으로 친일을 해오다 광복직후 혼란을 틈타 거부가 된다. 이인국이나 이중생은 바로 한국사회의 엘리트 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기회주의자의 모습이다. 수십년의 세월이 흘러 세기가 바뀐 지금까지도 이인국,이중생의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전두환정권 시절이던 1980년대 후반 LA 총영사관에서 경무영사로 근무했던 L씨가 있다. 행정고시 출신의 엘리트로 30대 중반의 나이에 벌써 총경직위에 올라 있었다. 기름을 발라 단정하게 빗어넘긴 머리부터 발끝까지 짜르르 윤이 났고 자신감에 넘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같은 또래들에 비해 진급이 빨라 주위의 부러움을 샀던 인물인데 전대통령의 형인 전기환씨가 뒤를 봐주고 있다는 소문까지 있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그의 인상이 지금까지도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이유는 그가 사적인 자리에서까지 전두환 정권의 대변인처럼 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광주사태’(지금은 시민혁명이 됐지만 당시는 사태였다) 무력진압의 당위성을 논하며 기자들을 설득하려고 했다. "이 친구가 제정신인가"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물론 그 전후에 근무했던 다른 경무영사들이나 일반영사들중에도 군사정권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처럼 기자를 설득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없었다.

그는 정권이 바뀌어서도 승승장구 출세가도를 달렸다. 40대 초반의 나이에 출신도의 경찰청장을 하더니 15대때 신한국당 국회의원이 됐고 16대때는 자민련으로 옮겨 재선됐다. 새삼 그의 이야기를 끄집어낸 것은 그가 자민련 당직자에 임명됐는데도 불구하고 이번 개각때 탈락한데 대해 불만을 품고 잠적했다는 보도를 접했기 때문이다. LA총영사관 근무시절 DJ를 ‘빨갱이’로 몰아세우고 ‘광주사태의 배후세력’이라고 강변했던 그가 이제와서 그밑에서 입각을 하고싶어 안달하고 있다는 현실에서 또 하나의 ‘꺼삐딴 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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