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TV에 비친 북한

2001-03-2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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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시각

▶ 러셀 워킹<뉴욕타임스 기고>

북한의 국영 TV는 하루중 거의 대부분 볼 것이 없다. 재방송도 시험방송도 없다. 그러다 저녁시간이 되어 채널 22를 틀면 카메라는 짙은 색 정장이나 한복을 입은 청소년들로 가득찬 홀을 이리저리 비쳐댄다. 그들중 절반은 신같은 지도자 김정일을 찬양하는 붉은 깃발을 집으로 가져가고 나머지는 붉은색 아코디언을 상으로 받는다. 북한의 민주인민공화국의 전녁 오락시간은 이런 식으로 시작된다.

나는 중국의 단동에서 시청하고 있었다. 북한이라는 은둔의 왕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비밀스런 나라중의 하나이다. 대부분의 외국인 방문을 금지하고 외부 세계와의 접촉을 피한다. 그러나 매일 저녁 이곳 압록강에 면한 항구도시 단동에서는 TV를 통해 이 폐쇄사회가 스스로 깨닫는 것 이상으로 외부인들에게 자신을 드러낸다.

북한 TV 방송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김정일의 공장 순방에 몇시간씩 할애한다. 김정일 순방을 해설자는 거의 히스테리컬하다 싶을 정도로 떨리는 목소리로 해설을 한다. 그를 대하는 사람들은 허리까지 굽혀 인사를 한다. 관중은 주먹을 휘두르며, 가슴을 치며, 혹은 두손을 공중에 흔들며, 무아지경에 빠진 듯 겅중겅중 뛰며 환호한다.


북한 TV에는 또 그날 그날의 신문을 페이지마다 찍어서 보여주는 시간이 있다. 어린이 프로그램은 만화의 형식으로 나오는데 소년 영웅이 일본인에게 붙잡혀 소리지르지 못하도록 입에 막대기를 물린채 죽도록 매를 맞는 내용 같은 것이다.

북한에서 정말 이상한 것은 노동에 대한 이상화이다. 해설자가 열광하는 가운데 수천명의 노동자들이 등에 돌을 지고는 댐으로 달려가서 바위를 요란스럽게 쏟아내고는 다시 재빨리 돌아와 돌짐을 지곤한다. 클로즈업된 장면을 보면 노동자들은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묵직한 공포가 깃들어 있다.

북한 TV의 상당부분은 스탈린 세대의 러시아인들에게 친숙할 것이다. 탱크 퍼레이드며, 행진하는 병사들, 소련 스타일의 합창들이 그렇다. TV 프로그램이 그 나라의 가장 큰 자랑거리들을 내보인다고 본다면 북한의 가장 어두운 비밀들은 도대체 어떤 모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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