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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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된 일이네요”

2001-03-2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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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갑<샌타클라라대학 객원교수>

미국에 도착하여, 이틀이 지나 운전면허 시험을 보기 위해 샌타클라라 차량국에 갔다. 시험신청을 하고 바로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치렀다.

시험은 36문제 중 틀린 것이 5문제 이하면 합격이다. 나는 한국에서 가져온 미국생활 백과에 있는 문제를 보고 시험을 치렀는데, 시험결과 6문제가 틀려서 불합격이었다. 안타까웠다. 그 자리에서 다시 시험을 치렀는데 결과는 이번에도 틀린 것이 6문제. 또 불합격이었다.

며칠이 지나 다시 차량국에 가서 마지막 기회인 필기시험을 보아 합격하였다. 도로주행시험은 한달 뒤로 정해졌다. 운전연습을 할수 있는 임시 면허증을 발급해주었다.


그 뒤 중고차를 3,500달러에 구입하여 학교 출퇴근에 사용했다. 도로 주행시험은 주위 사람들이 교통법규를 잘 지켜야 하고 사전에 답사해보는 것이 좋다고 하였지만 한국에서 10년 이상 경력이 있는데 쉽게 합격하겠지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드디어 주행시험날. 주행시험 전 차량 점검 및 주행 신호 테스트를 받고 출발신호에 따라 출발하였다. 출발한지 5분쯤 되었을 때 동승한 시험관이 면허시험장 주차장에 파킹을 하라고 하지 않는가. 이상하다. 내가 듣기로는 최소한 20분은 걸린다고 하던데, 무언가 잘못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시험관은 불합격의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당신의 운전기술에는 별 문제가 없는데 정지신호에서 정지하지 않고 지나간 것은 결정적인 실수이기 때문에 시험을 중단하고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시험관의 야박함에 화가 났다. 심지어 악명높다는 시험관에 걸려 떨어졌다는 생각에 마음속으로 욕을 퍼부어 대고 싶은 심정이었다. 시험장까지 동행했던 박선생이 시험관으로부터 내 불합격 소식을 들었다며 빙그레 웃으며 “잘된 일이네요”라고 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그렇지 않아도 심사가 뒤틀려 있는데 잘 되었다니,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운전시험에 합격하면 “축하합니다”라고 말하고 떨어지면 “잘된 일입니다”라고 말한다고 한다.

한번에 합격하는 것도 축하 받을 일임은 물론이나 운전같은 경우는 자신에게는 물론이고 타인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데 영향을 주는 만큼 본인에게는 자만심을 버리고 더욱 신중하고 철저하게 대비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라는 취지로 이해됐다.

그리고 8일 후 다시 주행시험을 보기까지 아침에 집을 나설때도 집 주위를 돌면서 신호, 정지 등을 연습했고 유경험자에게 묻기도 했다. 첫 번째 시험 때 보다 훨씬 긴장되는 마음으로 시험에 응했다.

20분쯤 주행시험을 끝내고 돌아와 감독관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그는 열심히 나의 점수를 계산하고 있었다. 14점 감점으로 가까스로 합격이었다. 15점 이상 감점이면 불합격인데 그야말로 턱걸이를 한 셈이다. 근래에 이렇게 기뻐보기는 처음인 듯 싶었다. 시험관이 준 채점표를 집에와 서 검토해 보니 양보, 불필요한 정지 등에서 많이 감점을 당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다시 한번 신중하게 운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잘된 일입니다”라는 말이 나의 뇌리에 선명하게 형상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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